영화 ‘놈놈놈’의 진짜 모티브는 용정 ‘15만원 탈취사건’

  • 동아닷컴
  • 입력 2008년 8월 5일 15시 15분



"형, 이거 그냥 1000원에 귀 시장에 팔아버리자"(이상한 놈 윤태구의 단짝 만길)

"이 바보야, 이게 3000원이 될지 3만 원이 될지 어떻게 알아?"(윤태구)

1930년대 만주의 좀도둑 윤태구(송강호 분)는 열차를 습격했다가 일본인 은행가 가네마루의 가방에서 낯선 보물지도를 발견한다. 이 소식은 즉시 마적떼(나쁜 놈· 이병헌 분)와 현상금 사냥꾼(좋은 놈· 정우성 분) 그리고 일본군의 귀에 들어가고, 이들은 즉시 태구의 뒤를 쫓는데….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7월 17일 개봉한 지 단 18일 만에 전국에서 관객 541만 명을 불러 모으며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으로 떠올랐다. 이미 인터넷상에는 '놈놈놈'을 패러디한 각종 UCC들이 판칠 정도.

이 영화는 한 눈에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작인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원제 The Good, The Bad, The Ugly)'에서 설정과 모티브를 빌려온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김지운(43)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놈놈놈'을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고(故) 이만희 감독의 액션영화 '쇠사슬을 끊어라(1971년)였다"며 "영화에 등장하는 30년대 만주에서 나라를 빼앗긴 무정부주의자, 쿨한 주인공들의 성격을 차용해 세 놈들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고백해 화제가 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에서는 현재 '쇠사슬을 끊어라'가 재생순위 3위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1970년대 거의 모든 영화감독들이 만주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할 정도로, 이른바 '만주물'이 대유행 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부각됐다.(만주물은 현재 '만주 웨스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선배 감독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려왔지만 김 감독이 전혀 알아채지 못한 사실이 있다. 바로 만주를 배경으로 한 모든 웨스턴물의 진짜 모티브가 된 사건은 다름 아닌 1920년 1월4일 만주 용정(龍井)시 인근 동량어구에서 벌어진 '15만원 탈취사건'이라는 사실이다.

백두산 관광을 위해 연변을 찾는 모든 패키지여행에는 연길시 인근 용정에 위치한 옛 대성중학교(현 용정중학교)가 필수 코스로 포함돼 있다. 최근 '강호동의 1박2일' 즉석 현지 공연으로 유명세를 탄 이 곳은 홍범도, 서일 장군 등 수많은 독립지사는 물론 윤동주 시인까지 배출한 북간도 지역 최고 명문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용정시 옛 대성중학교 기념관(왼쪽)과 내부 모습(오른쪽).
용정시 옛 대성중학교 기념관(왼쪽)과 내부 모습(오른쪽).

대성학교 옛터는 '룡정 독립운동 기념관'으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는데, 그 한켠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15만원 탈취의거' 사건이다. 연변의 조선족들에게 이 사건은 청산리 대첩과 비견될만한 뜻있는 역사인 셈이다.

기자를 안내한 한 조선족은 이를 가리키며 "만주에 대한 달콤한 환상과 처절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고 평가했다. 일본으로부터 15만 원을 탈취했다면 굉장히 통쾌한 사건일 텐데 어째서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1920년. 당시 용정은 북간도 지역의 중심 도시로 무장투쟁을 꿈꾸는 독립군들의 집결지가 되어가고 있었다.(청산리 대첩이 있던 시기가 바로 1920년 10월이다)

당시 무장독립조직인 '북로군정서' 소속 철혈광복단 단원 6명은 독립군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던 참에 1월4일 조선총독부가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용정출장소로 '반일투쟁탄압경비'조로 15만원을 수송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당시 최신 소총 한 정이 30원이었다고 하니 15만원은 독립군 5000명을 단번에 중무장시킬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었다.

의거에 참여한 인물은 무장투쟁을 주장했던 최봉설, 임국정을 비롯해 윤준희, 박웅세, 한상호, 김준 등 6명. 이들 철혈광복단이 이 같은 최고급 정보를 접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조선은행에 은밀하게 침투하여 근무하던 한 반일투사가 정보의 원천이었기 때문.

연변 용정시 옛 대성중학교 기념관에 전시된 15만원 탈취 사건의 주역들.
연변 용정시 옛 대성중학교 기념관에 전시된 15만원 탈취 사건의 주역들.

이들 6명의 의인은 1920년 1월4일 오후 8시 이들은 용정 어귀 동량어구에 매복하고 있다가 현금수송마차를 습격하여 5명의 무장 호송대를 사살하고 철궤에 담긴 지폐 15만원을 탈취하는데 성공한다.

이들은 즉시 농부로 가장한 뒤 돈 짐을 메고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무기구입 원정길에 나선다. 당시에 러시아는 홍군과 백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백군을 지원하기 위해 시베리아 원정에 나선 체코군단이 패배를 직감하고 헐값에 무기를 처분하려고 서두르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철혈광복단은 약 3만정의 중고 소총을 구매하는 계약 직전단계까지 갔는데, 여기서 아주 뜻밖의 인물과 부닥치게 된다. 한때 안중근 의사와 함께 활약했던 명망 있는 독립운동가 엄인섭이라는 인물이다.

엄인섭은 1914년까지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벌일 정도로 항일운동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나 변절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무기상이자 일본의 첩자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최봉설 등이 지닌 거금을 보고 즉각 일본군에 밀고한다. 일본군은 조선 나진항에 정박한 군함을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할 정도로 신속한 대응을 벌이며 이들을 체포하는 데 열을 올린다.

결국 1920년 1월 하순, 탈출에 성공한 최봉설 등을 제외한 4명의 철혈광복단 단원과 신한촌의 조선인 반일전사 500여 명이 붙잡혔다. 철혈광복단은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져 사형 선고를 받았고 다른 독립군들은 청진감옥으로 이송됐다. 이들이 소지하고 있던 13만 원 이상의 현금 역시 고스란히 일본은행으로 반납됐다. 그 후 용정에서 최 씨의 육필원고가 발견돼 2007년에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15만원 탈취 의거는 의미가 작아 잊혀졌다기 보다 같은 조선인 배신자에 의해 망가졌기 때문에, 그 뼈저림으로 인해 말하는 것을 서로 꺼려온 면이 적지 않습니다."(조선족 가이드 김철민씨)

이 사건이 당시 만주에 살던 한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특히 군자금을 조달하려는 독립운동가와 이를 캐내려는 일본 정부, 그리고 개인적 욕망에 사로잡힌 한 배신자의 스토리는 후대인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며 만주를 배경으로 한 여러 작품의 소재로 활용돼 왔다는 게 조선족들의 증언이다.

용정(지린성)=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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