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7월 28일 08시 0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 김추자, 시대적 제약 분위기로 돌파
TV가 매스미디어의 주역으로 부상한 시대에 맞춰 탄생한 한국 가요계 첫 섹시 아이콘. 1969년 데뷔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늦기 전에’ ‘거짓말이야’ ‘꽃잎’ 등을 히트시켰다. 소울에 기반을 둔 끈적한 노래 분위기, 몽환적 음색과 제스처, 화려했던 춤 등 섹시함에 대한 시대적 제약을 노출이 아닌 분위기로 돌파한 첫 섹시퀸이다. 딱 붙는 셔츠와 나팔바지, 머플러와 풀어헤친 셔츠 단추 또한 섹시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삶 자체도 섹시했다. 임신설 간첩설 ‘김추자 소주병 난자사건’ 등 가수 활동 낸 각종 대형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대마초 스캔들 이후 침묵하다가 1980년대 후반 의외의 복귀 공연을 가져 화제를 모은 뒤 다시 사라져버린 신비주의 속에 살고 있다.
○ 김완선, 파격 댄스로 보수시선 도전
‘댄싱 퀸=섹시스타‘의 공식을 만든 첫 여성 가수.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했고 이후 일찍이 여가수에게선 볼 수 없었던 파워풀한 춤으로 당대의 섹시 스타로 군림했다. 춤 외에도 백치미적 분위기와 외모, 몸매, 눈빛으로 섹시함을 증폭시켰다.
김완선의 섹시미는 민주화에 이은 개방적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기에 활동했던 덕에 이전 여가수들에 비해 좀더 거부감 없이 평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 내에 남아 있던 보수적 분위기를 감안해 노출이나 섹시에 대한 당당한 언급 등과는 거리가 멀었던 과도기의 섹시퀸이었다.
○ 엄정화, 노출 통한 건강한 섹시미 선보여
섹시함이 자랑스러움임을 당당하게 표출한 첫 여가수. 1993년 데뷔 후 한동안은 ‘눈동자’ ‘하늘만 허락한 사랑’ 등 발라드 풍의 노래로 활동하다 1997년 ‘배반의 장미’를 시작으로 작곡가 주영훈과 손잡고 본격적인 댄스 가수로 변신하면서 섹시 스타로 우뚝 섰다.
‘초대’에서는 분위기로, ‘페스티벌’에서는 노출을 통한 건강한 섹시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섹시함을 내보였다. 패션을 섹시스타의 필수 요소로 만들었고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도발적으로 언급했던 첫 섹시 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엄정화도 섹시함 자체로만 승부하진 못했다. 귀여움을 가미한 ‘큐트 섹시‘로 90년대 후반까지도 여전했던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돌파했다.
○ 이효리, 섹시함 그 자체로 승부수
‘한국의 마돈나’ 계보학을 완성한 여가수. 분위기, 패션, 춤, 도발적 언행 등 섹시퀸의 필수 요소 모두를 갖췄다. 솔로 데뷔 히트곡 ‘10 minutes’를 통해 섹시함으로 여성이 남녀 관계를 주도하고 우위에 설 수 있음을 당당하게 선언한 개척자이다.
뿌리 깊은 보수성의 눈치를 보느라 섹시함에 귀여움이나 순수함 등 다른 요소들을 섞었던 기존의 섹시퀸과 달리 섹시함 그 자체로 승부를 벌인 첫 여가수이기도 하다. 이효리 이후로 가요계는 섹시 여가수 융성기가 열려 수많은 아류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 영 균
스포츠지 대중문화 전문 기자로
6년간 음악·영화에서
열정을 불태운 몽상가.
지금은 ‘킬러 콘텐츠’를 만든다며 매일 밤
담배와 커피를 벗삼아 지내고 있다.
[최영균의 21C 必聽음악실] 화끈한 여름 노래 “태양아! 노~올자”
[최영균의 21C 必聽음악실] 세련된 흡입력…‘명품’ 팝 발라드 계승자 우뚝
[최영균의 21C 必聽음악실] ‘파워풀한 가창력’ 가수는 노래로 말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