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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24일 0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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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공연이 너무 재미있든 공연이 별로이든 상관없이 귀에 꽂히는 그런 넘버들이 들릴 때. 위에 적은 경우는 후자였다. 내가 생각하는 뮤지컬의 매력 중 한 가지는 수려한 뮤지컬 넘버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좋은가! 멋진 배우들이 눈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불러주는 노래라니.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들은 그 어떤 가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지킬 앤 하이드’의 ‘This is the moment’(우리나라에선 ‘지금 이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하여 불렸다)같은 경우는 가사의 의미 때문인지 중요한 행사들에서 많이 불러지기도 한다는데, 우리나라 뮤지컬 넘버들도 그럴 날이 오겠지?
사설이 너무 길었나? 아니 전혀 연관이 없는 이야긴 아니었지만, 뮤지컬을 보다보면 내게 꼭 맞는 넘버들이 있다. 기성복 매장에서 옷을 살 때 같은 사이즈라도 A브랜드의 옷과 B브랜드의 옷 중에서 내게 맞는 옷이 있듯이, 뮤지컬 넘버들도 내게 맞춘 것처럼 잘 맞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앞서 공연은 별로였지만 뮤지컬 넘버가 너무 좋아 그 넘버들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는 건 사실 공연의 전체적인 측면에선 성공한 뮤지컬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넘버라도 기억에 남는 것이 어딘가! 공연이 끝나는 것과 함께 뇌리에서 순식간에 없어지는 공연들도 넘쳐나는데!
예전에는 이런 경험도 있었다. ‘Rent’를 보러갔을 때였다. 사실 ’Rent’는 넘버들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뮤지컬이다.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들을 알아야 극의 진행 내용을 놓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처음 보러갔을 때 나는 그 공연이 재미가 없었다. 뮤지컬 넘버들 속의 말들도 좀 빠른 편이고(그 때는 그렇게 느꼈다.) 두 명이 듀엣을 하는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해대니 누구 것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공연 내용에 대한 사전 정보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공연을 보러 가자했던, 이른바 강추를 한 친구를 탓했다. 감동이 물씬 밀려왔던 친구의 얼굴을 보며 ‘내 감성이 이상한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 ‘Rent’의 넘버들을 찬찬히 들어보니 공연장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들이 밀려왔다. 바로 다음날 그 감동을 잊을까 서둘러 공연장을 찾았다. 지금 내 책상 한 켠에는 ‘Rent’의 뮤지컬 CD와 영화판 DVD가 있고 가끔씩 돌려볼 정도로 이제는 좋아하는 뮤지컬이 되었다.
날 ‘Rent’에 빠지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다시 듣게 된 그 넘버들이었다. 그렇게 뮤지컬 넘버들은 나에게 다가왔고, 지금도 내 MP3의 한 목록은 ‘뮤지컬 넘버’가 차지하고 있다. 뮤지컬을 보고 나오는 길에 입가에서 흥얼거리게 되는 넘버가 있다면, 꽉 붙잡아라! 그 넘버가 당신을 뮤지컬 홀릭의 세계로 초대하게 될테니 말이다.
정영진
뮤지컬, 연극이 좋아 방송국도 그만두고 하기 싫다던 공부에 올인하는 연극학도
공연이라면 먼 거리라도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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