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안방극장 ‘쿠거족’ 이색 열풍

  • 입력 2008년 5월 13일 08시 02분


《안방극장은 바야흐로 연상녀, 연하남의 연애 천하다. 서너 살 차이는 기본. 적게는 5살, 많게는 10살 이상 차이 나는 연상녀, 연하남의 연애 패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수준을 넘어 보란 듯이 뜨거운 애정을 과시하는 연상녀, 연하남 커플은 서구의 경우 ‘쿠거(Cougar)족’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고양이과 동물인 쿠거에 유래된 ‘쿠거족’은 나이 차 많이 나는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폭발적인 증가 현상을 일컫는 북미 지역의 신조어다.》

○ TV 안방극장 ‘쿠거족’ 곳곳 포진

지상파TV 안방극장은 바다 건너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쿠거족 열풍을 국내에 전하는 주매체이다.

요즘 드라마는 나이 차 많은 남녀가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을 앞다투어 그리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 역시 그들의 사랑을 불편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고 있다.

SBS ‘조강지처 클럽’의 오현경-이상우, MBC ‘달콤한 인생’의 오연수-이동욱, KBS 2TV ‘엄마가 뿔났다’의 김나운-김정현,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김청-김병세 커플 등 드라마 속 쿠거족은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SBS ‘조강지처 클럽’ 오현경-이상우 커플은 극중 6살, 실제 10살 차이다. 오현경은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나이 차이가 너무 나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시청자들이 극중 나화신(오현경)과 구세주(이상원)의 러브라인을 열렬히 옹호하고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철없는 남편 한원수(안내상 분) 보다 오히려 듬직한 방패막이 되어주고 있는 ‘핸섬 연하’ 구세주는 아줌마들의 로망으로 자리잡고 있다.

3일 첫 방송한 MBC ‘달콤한 인생’ 오연수-이동욱은 극중 10살, 실제로도 10살 차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다. 10일 방송에서 눈 쌓인 일본의 풍광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파격 베드신까지 선보였다. 실감나는 연기를 두고 지상파에서 적절치 않았다는 선정성 논란은 일었지만 두 사람의 나이 차 때문에 이들의 사랑이 불편하다는 평은 눈에 띄지 않았다.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김청-김병세는 극중 12살 차이가 나는 띠동갑 연상연하 커플. 경제력 있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남성과 화합한 경우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극중 5살, 실제로 6살 차이 나는 ‘엄마가 뿔났다’의 김나운-김정현 커플은 권위주의 없는 연하 남편과 주도권을 쥔 연상의 부인을 대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 안방극장 ‘쿠거족’ 열풍, 왜?

드라마 속에 ‘쿠거족 열풍’이 유행처럼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네 가지. 첫째 주부 시청층의 TV 주도권, 둘째 주연급 남자 배우 기근 현상, 셋째 드라마틱한 설정과 넷째 현실 반영을 꼽을 수 있다.

△ 주부 시청층의 TV 주도권=TV 드라마 주 시청층은 단연 30∼50대 여성이다. 10대∼20대의 젊은 층은 TV가 아닌 다양한 매개를 통해 드라마를 접하고 있고 남자 시청자들은 비교적 현대극 보다 사극을 선호한다. 때문에 시청률과 광고 수익의 밀접한 상관 관계 속에 있는 방송사는 주부들의 취향에 맞는 드라마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드라마 속 ‘쿠거족’은 TV 리모콘을 주도하는 주부들의 대리만족 창구로 안성맞춤 소재인 것이다.

△ 주연급 남자 배우 기근 현상=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주연급 남자 배우들의 기근 현상도 하나의 이유다. 송승헌, 소지섭, 김래원, 이준기, 원빈, 권상우, 엄태웅, 조인성, 천정명, 이동건, 공유 등 톱스타들은 현재 대작 드라마나 영화, 군입대 등으로 발목이 잡혀 있다. 이로 인해 요즘 드라마에는 신선한 마스크의 신인 혹은 베테랑 남자 탤런트들의 틈새 공략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 더 드라마틱한 설정=“이제 평범한 트렌디 드라마가 설 곳은 없다.” 드라마를 만드는 한 제작사 PD의 말이다. 그는 “시청자들은 더욱 드라마틱한 설정을 원하고 있다. 비슷한 또래가 그리는 사랑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시대가 왔다”며 드라마에 속속 등장하는 나이차 큰 커플에 대해 설명했다.

△ 현실 반영=현실 속 이야기가 드라마에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은 쿠거족을 양산하고 있다. 돈 많은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끌리듯 경제력 있는 여성이 젊은 남성에게 끌리는 현상은 드라마 속 스토리만이 아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지난 해 7∼9월 연상녀-연하남 커플에 대한 남녀 1462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6.1)가 여성의 경제력에 끌린다고 답했고, 여성들은 연하남의 애교(37.5)나 서로 존중해주는 평등한 관계(32.5)를 장점으로 꼽았다.

○ 여성 상위 > 남성 상위

드라마 속 ‘쿠거족’ 열풍은 이색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커플이 똑같이 등장해도 여자가 나이가 많은 ‘여성 상위’ 드라마가 반대인 ‘남성 상위’ 드라마보다 시청률 우위를 보이는 것.

SBS ‘사랑해’ 안재욱-서지혜 커플은 극중 14살, 실제 13살 차이다. MBC ‘누구세요’ 윤계상-아라 커플 또한 극중 10살 이상, 실제 12살 차이. 남자 배우들의 나이가 월등히 많은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저조하다. 쿠거족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20∼30의 시청률을 고공행진 하는 것과 상반되게 4∼8대에 묶인 아이러니한 결과다. 물론 ‘이산’과 ‘온에어’라는 강적 드라마와 경쟁한 최악의 대진운도 작용했지만 주부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결론은 피할 수 없다.

이유나 기자 ly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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