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수다]섹스가 폭력보다 나쁜 건가?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사진 제공 스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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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상영관(‘제한상영가’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이 어디 있어요?”(기자)

“그게, 저희는 등급 분류만 하거든요. 찾아보고 연락드릴게요.”(영상물등급위원회 관계자)

이틀 후. “찾으셨어요?”(기자) “서울에는 없고, 광주에 있다고 해서 물어봤더니 아니라 하고 누구는 대구에 있다고 하고… 파악이 안 되네요.”(영등위)

“그럼 여태까지 상영관이 없는데 제한상영가를 결정한 건 사실상 ‘상영금지’네요?”(기자)

“아, 그런 건 아니고…(상영관이) 없는 게 아니라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죠.”(영등위)

발단은 지난해 영등위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의 영화 ‘숏버스’였다. 수입사 스폰지는 판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고 얼마 전 법원은 등급 분류 결정 취소 판결을 내려 스폰지의 손을 들어줬다. 영등위는 항소할 방침이다.

제한상영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고 광고, 비디오 출시, 방송도 금지된다. 그동안 국내에는 제한상영관이 없다는 보도가 있었는데도 정작 영등위만 몰랐다.

지난해 기자시사회에서 ‘숏버스’를 봤다. ‘숏버스’라는 지하클럽에 모여든 뉴요커들의 이야기로 재작년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이다. 성기 노출에 정액을 쏟는 장면과 집단 혼음까지 나온다. 섹스 장면이 하도 자주 나와 졸기까지 했다. 큰 재미는 없었지만, 섹스를 팔아먹는 음란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혹시나 하고 본 사람들에겐 오히려 지루할 거다. 지난해 ‘숏버스’가 등급위에 올라왔을 때도 13명의 등급위원 표결 결과 7 대 6으로 팽팽한 설전이 벌어졌단다.

스폰지 조성규 대표는 “인간의 소외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라며 “한국 관객은 주제와 상관없이 노출 기준으로 영화를 보고, 또 못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가 극장에 걸려도 관객이 많이 들 영화가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과정을 통해 애매한 법 규정이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200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멕시코 영화 ‘천국의 전쟁’도, 2001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작 ‘인티머시’도 제한상영가를 받아 국내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다 섹스 장면 때문이다.

등급위원들의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예 상영을 못하게 하는 건 지나치다. 제한상영가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예술영화전용관이나 시네마테크에서라도 상영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 성인 관객은 다 보는데, 한국 성인 관객만 치마폭에 싸인 어린아이 취급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드고어나 슬래셔 무비도 좋아하지만, 최근 이런 영화들에 있는 폭력 장면은 자식에게는 보여 주고 싶지 않을 정도다. 나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한국의 등급 분류는 폭력에는 관대하고 섹스에는 엄격하다. 남의 배를 칼로 쑤시고 목을 자르는 장면보다 섹스 장면이 더 나쁘다는 건가?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실제 성행위로 제한상영가 ‘숏버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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