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보석되기 위해 더 깎여야죠”

  • 입력 2007년 9월 22일 10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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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자신의 프로필을 보더니 기자의 펜을 뺏어 뭔가를 고친다. 160cm로 나온 키에 줄을 긋더니 158cm로 깎는다. 학력사항에는 ‘친절하게’ 96학번(서울예대 실용음악과)이라고 적는다.

취미에 적힌 수영, 포켓볼에 ‘엑스표’를 치더니 ‘사진(출사)’을 새롭게 썼다. 다리를 떨고 입술을 뜯는다는 버릇에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있을 때’라고 덧붙였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상형’이다. 이후 A4용지는 검정 글씨로 까맣게 변해 버렸다.

솔직한 그녀의 이름은 박기영. 이상형은 프로필이 작성된 데뷔 때나 지금이나 ‘영(靈)이 맑은 남자’란다.

●“도보 800km 성지순례로 상처 치유했어요”

올봄 자비로 스페인 산티아고 성지순례에 나선 박기영은 “원래 여행은 자비 들여가는 것 아닌가. 요즘 연예인들이 협찬을 끼고 가는 경우가 많긴 하다”고 꼬집었다.

박기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이 힘들어서 운명적으로 떠나게 됐다”면서 힘들었던 과거를 하나씩 꺼내놓았다. 실연을 비롯해 여러 상처가 복합돼 44kg이던 몸무게가 37kg로 내려갔고 탈모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30대의 첫 겨울에 가장 힘들었어요. 죽을 것 같았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책을 읽으면 글씨가 날아다니고 음악은 공해가 되어 칼을 들이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절친한 친구가 건네준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를 읽고 스페인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달이 넘도록 800km를 걸으면서 남긴 사진과 생각을 기록(책)으로 남긴 박기영은 “책을 내겠다고 했는데 ‘연금술사’ 출판사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며 운명론을 내세웠다.

“산티아고에서 멋진 남자를 못 만났느냐”고 농담을 던지자 “아, 그럴걸 그랬네요”라고 했다가 이내 “근데 전 토종 한국남자가 좋아요. 무뚝뚝해 보이지만 자기 여자에겐 책임감이 어마어마 하잖아요”라고 말을 바꾼다.

●“심수봉 선생님, 한 번 뵙고 싶어요”

소속사를 옮기고 처음 내놓은 싱글에는 ‘사랑’으로 가득 찼다.

‘두 번째 사랑은 다를 거라고...’로 시작되는 타이틀곡 ‘미안했어요’는 성지순례 이후 강인해진 그의 속내가 읽힌다.

심수봉의 ‘비나리’ 리메이크곡과 3번 트랙 ‘Camino’는 ‘앞날의 행복을 빈다’는 염원이 담겼다(비나리가 비가 오길 바란다는 사전적 의미 외에 앞날의 행복을 빈다는 뜻이 있으며 스페인어 camino와 일맥상통한다고 하자 박기영은 처음 알았다며 앨범 홍보 멘트로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심수봉 선생님은 가장 닮고 싶은 싱어송라이터에요. 작년 공연 때 저의 6집 CD에 카드를 써서 드렸는데 부끄럼을 많이 타시더군요. 이번에도 선생님께 연락해 ‘비나리’를 쓰겠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감사의 의미로 식사라도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이번에도 부끄러워하시면서 CD만 보내달라고 하시네요. 어제 와인하고 함께 보내드렸어요.”

박기영의 ‘비나리’는 원곡보다 ‘떨림’이 덜하다. 이에 대해 박기영은 “감정의 포인트를 테크틱이 아닌 가사에 뒀기 때문”이라며 “느낌이 좋아서 4번 만에 녹음을 끝냈다”고 말했다.

내년 3월이면 만으로 데뷔 10년이 되는 그는 “이제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조금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과 많이 닿아서 모난 게 깎아져서 둥글게 된 건 아닙니다. 가치가 없던 원석이 좋은 품질의 ‘보석’이 되기 위해 외부의 압력을 견디고 잘 깎여졌다고 봐주세요. 앞으로도 많이 깎여야 할 겁니다.”

스포츠동아 정기철 기자 tomjung@donga.com

사진=양회성 인턴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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