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꽝태자의 첫사랑’… ‘파리의 연인’에 완패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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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첫사랑’은 장소 협찬을 해준 리조트의 모습을 스토리와 무관하게 자주 내보내 ‘1시간짜리 CF’라는 비판을 들었다.- 사진제공 MBC
‘황태자의 첫사랑’은 장소 협찬을 해준 리조트의 모습을 스토리와 무관하게 자주 내보내 ‘1시간짜리 CF’라는 비판을 들었다.- 사진제공 MBC
얼마 전 종방한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MBC ‘황태자의 첫사랑’(수목 오후 9:55).

재벌 2세-캔디형 여성의 삼각관계, 남자 주인공들이 ‘알고 보니 형제’라는 출생의 비밀 등 두 드라마의 골격은 비슷하다. 파리나 발리 등 해외를 무대로 한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파리의 연인’이 시청률 50%를 넘나드는 히트작이었던 데 반해 ‘황태자…’는 10%를 약간 웃도는데 그쳤다. ‘황태자의 첫 사랑’은 왜 실패했을까.

○ 캐릭터 설정이 잘못됐다

‘황태자의 첫사랑’은 초반 26.8%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차태현 성유리 김남진으로 이어지는 호화 캐스팅 덕분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간대 비와 송혜교가 주연을 맡은 ‘풀하우스’(KBS2)가 등장하자 곧 밀리기 시작했다.

‘황태자의 첫 사랑’은 주인공 건희(차태현)의 초반 캐릭터 설정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건희는 뜨거운 가슴이 없는 ‘망나니 재벌 2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 유명작가는 “‘초반부터 튀어야 시청자를 잡는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차태현의 캐릭터를 과장한 게 결함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차태현은 장기인 ‘밉지 않은 푼수’ 캐릭터를 살리지 못했다. 유빈(성유리)의 극중 대사처럼 ‘황태자’가 아닌 ‘꽝태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울하고 나른한 이미지를 가진 김남진이 야망을 가진 승현 역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성유리도 오뚝이 같은 캔디 캐릭터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이화여대 언론영상홍보학부 주철환 교수는 “드라마는 무엇보다 인물의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한다”며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뻔한 이야기일수록 캐릭터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 인물과 행동도 비현실적

‘파리의 연인’ ‘황태자의 첫 사랑’은 ‘신데렐라 판타지’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선다. 그러나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그 속의 인물들은 현실적이어야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황태자의 첫 사랑’의 인물과 행동은 비현실적이고 유치하다. 건희는 자신을 속인 유빈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회사 면접에서 그를 떨어뜨리고, 유빈의 여행용 가방을 훔친 뒤 이를 돌려주는 대가로 쇼핑하자고 한다. 스노클링을 하던 유빈을 바다 가운데 버려두고 배를 타고 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설정은 사랑 공방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어서 시청자들의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유빈이 왜 해외 리조트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등 상황 전개의 필연성이 부족한 점도 지적된다. 한 작가는 “‘순풍산부인과’ 등 시트콤을 주로 써온 김의찬 정진영 작가가 시트콤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판타지 드라마일수록 꿈이 현실적으로 보이는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다른 드라마들의 사례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드라마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 ‘황태자의 첫사랑’은 오랜 준비보다 스타 이미지만 앞세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1년 넘게 준비한 MBC ‘불새’는 30%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사극 SBS ‘왕의 여자’ 의 후속작으로 갑자기 편성된 ‘인간시장 2004’는 10%대에 머물렀다.

외주제작사 초록뱀미디어의 김기범 사장은 “장기적 기획 아래 캐릭터 설정, 이야기의 흐름, 캐스팅 등을 꼼꼼히 준비해야 실패를 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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