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로비에서/바둑TV가 야구중계하는 사연

  • 입력 2004년 5월 16일 17시 28분


최근 오전 10시경 케이블채널 바둑TV를 보던 최모씨는 어리둥절했다. 일본프로야구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 중인 이승엽 선수의 경기를 녹화중계하고 있었기 때문. 최씨는 채널 이름을 다시한번 확인해야 했다.

바둑TV는 지난달 24일부터 ‘수퍼 액션’ 채널에서 이승엽 선수가 나오는 경기의 중계권을 사들여 오전 9시부터 3시간가량 내보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편성한 뒤 오전 시간대 광고 수주 금액이 약 2배 늘었다.

바둑TV의 김옥곤 PD는 “아침 시간대는 바둑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낮다”며 “바둑 프로그램의 재방을 줄이고 생중계 시간을 늘리기 위한 재원 확보 차원”이라고 말했다. 바둑TV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포커 대회 등도 중계할 예정이다.

이 같은 ‘외도’는 바둑TV만 아니다. 인터넷바둑 사이트인 세계사이버기원(서비스명 사이버오로)도 7월부터 포커 마작 등 보드 게임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세계사이버기원은 2년 전 유료화를 실시했으나 유료 회원이 3만여명에 그쳐 겨우 적자를 면하는 상태. 세계사이버기원 손종수 실장은 “현재와 같은 수익 구조로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며 “포커 등 다른 게임 서비스에서 수익을 내 바둑에 재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인터넷 바둑 사이트인 세계사이버기원이 이 정도라면 다른 바둑 사이트들도 앞다투어 게임 중계 등에 합류할 것으로 바둑계는 보고 있다.

바둑팬들은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둑TV 홈페이지에는 ‘바둑TV답게 알찬 바둑 프로그램을 방영하려고 노력해야지 웬 야구 경기냐’는 항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바둑계는 바둑 산업의 기반이 취약한 현실에서 팬들의 역할을 묻고 있다. 한국기원 자회사인 세계사이버기원의 회원이 65만명인데도 월 5500원을 내는 유료 회원이 3만명에 불과한 현실을 감안하면, 기업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둑 팬들이 스스로 바둑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면 바둑계 전체가 초라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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