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본 전부 외워서 방송” 시각장애인 MC 심준구씨

  • 입력 2003년 6월 10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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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인이 국내 TV 방송 사상 처음으로 메인 MC를 맡는다. 14일 첫방송되는 경인방송 ‘사랑의 릴레이-함께 하는 세상’(토 오전 10·10)의 진행자로 1급 시각장애인 심준구씨(35·사진)가 등장하는 것.

제작진은 점자 대본을 권했으나 그는 A4 용지 20장 분량의 대본을 완전 암기했다. 한글 문자 파일을 오디오 파일로 전환해 읽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본을 수십 번 반복해 들었다.

“진행시 대본을 ‘커닝’할 필요가 없죠. 대본을 머릿속에 두고 55분 동안 오로지 시청자(카메라)만 쳐다볼 수 있다는 게 시각장애인 MC가 갖는 경쟁력 아닐까요?”

심씨는 초등학교 3년때 망막 색소가 변해 시력이 떨어지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게 되면서 시력을 잃었다. 2년 뒤에는 시험지의 글자도 보이지 않아 교사가 시험 문제를 읽어줘야 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외우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암기력을 늘려왔다. 대본도 연상 기억법으로 암기했다고 한다.

“‘한 단락은 뇌 왼쪽 상단에 다음 단락은 왼쪽 중단에…’하는 식으로 분류해 저장해 놓고 컴퓨터 윈도우(창)처럼 그때 그때 빼내어 머릿속에 띄우는 거죠.”

장애인들에게 심씨는 희망의 창(窓)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국가공인 장애인 컴퓨터 속기사로, 2002년 장애인 기능경기대회에서 이 부문 금상을 받았다. 4월에는 ‘올해의 장애극복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으며 KBS MBC SBS EBS의 TV에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 방송을 제작하는 한국스테노사의 기획실장이다.

프로그램 녹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카메라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 수시로 바뀌는 카메라의 위치를 좇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그의 귀에 이어폰을 이어 “12시 방향” “9시 패널들 방향” 등으로 카메라의 위치를 알려준다.

코미디언 김혜영와 함께 진행하는 ‘사랑의 릴레이’는 장애인 독거노인 등 소외층이 제빵 기술을 배우거나 밴드를 만들어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돕는 과정을 담는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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