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조재현, 그의 연기엔 '삶의 비린내'가 묻어난다

  • 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12분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의 중심에 선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 '나쁜 남자'(내년 1월11일 개봉예정)였다. 사창가의 남자 포주가 자신을 퉁명스럽게 대한 한 여대생을 애인으로 만든 뒤 사창가에 팔아 넘긴다는 게 기둥 줄거리.

관객들은 "주인공의 캐릭터가 최근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비열하다" "꼭 그런 식으로 밑바닥 인생을 그려야 하냐"며 김 감독에게 가시돋친 질문을 쏟아냈다. 관객들의 '비난'을 받은 '나쁜 남자'는 바로 조재현.》

'나쁜 남자'에서 포주 역할을 맡은 주인공은 조재현(36). 그는 지난달 21일 첫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피아노’(밤 9·55)에서도 3류 건달 한억관으로 나와 밑바닥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조직의 1인자가 사라진 뒤 대신 권세를 부려보지만 동시에 제 그릇을 아는 인간. 하지만 예견된 자신의 몰락에 발버둥쳐보는 인간이다.

한 영화평론가는 그에 대해 “누군가 한국의 대표 건달 연기자를 묻거든 조재현을 보게 하라”고 말했다. 동시에 영화, 방송계에서는 그의 이런 연기가 실제 체험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쑥덕거리기도 한다.

“어릴 때 서울 대학로 산동네에 살았어요. 지금은 연극의 메카지만 그 때만해도 똘마니 급 깡패가 득실거렸죠. 아는 형의 80%는 그랬는데 뭐 대단히 큰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구멍가게 등쳐먹는 수준이었죠.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안 사정이 나아져서 그곳을 떴고 지금은 평창동에 삽니다.”

조재현은 고등학교 때는 기사가 운전하는 이탈리아제 ‘피아트’를 타고 등교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인지 그런 부유함이 오히려 불안했어요. 그래서 가출도 해봤지만 심하게 일탈한 적은 없었죠. 그러다가 대학(경성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이후 부산에 살면서 연기생활에 많은 영향을 받았죠.”

그는 부산에서 특히 여자를 많이 만났다. 어느 날은 자신에 비해 ‘객관적으로’ 정말 별 볼일 없는 여자를 무작정 쫓아다녔다.

“그 여자가 나를 만나주지 않더군요, ‘나쁜 남자’에서처럼요. 그래서 그 애 아파트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데 안 나타나는 거예요. 그 아파트 수위아저씨와 라면먹으면서 계속 기다리는데 오기에 처량함에 온갖 느낌이 동시에 들었어요.”

조재현는 ‘나쁜 남자’ 이전에 영화 ‘섬’ ‘수취인 불명’(이상 김기덕 감독)에 출연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밑바닥 인생은 스스로 3류이면서도 동시에 자신보다 더 못한 주위를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특히 그가 ‘수취인 불명’에서 맡은 개장수는 미군 남편에게 버림받은 한 기지촌 여성을 남모르게 돕는다.

조재현은 상대적으로 직접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친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비린내를 펄펄 풍기는 밑바닥 이미지를 뽑아낸다고 한다. 특히 해병대 출신에,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다가 돌연 영화계에 뛰어든 김 감독은 조재현의 연기 인생에 바닥이 보이지않는 ‘화수분’같은 존재다.

“김 감독이 감독 데뷔 전 서울역에서 세운상가까지 20㎏짜리 전선줄을 나르는 일을 했는데 버스만 타면 멀미를 해서 그냥 들고 걸어왔대요. 3시간씩 걸렸는데 돈없어 택시는 못타고 손에는 피멍이 들고…. ‘에이, 엿같은 세상’하면서도 동시에 두 눈은 공짜 차 태워줄 사람을 찾았겠죠.”

요즘의 인기 폭등세로 인해 조재현은 온갖 ‘조폭 영화’의 출연 제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분간 상업적 ‘조폭 영화’는 피하고 싶어요. 제가 연기하는 건 조직폭력배가 아니라 ‘건달’이거든요.”

그러면 조재현이 보는 건달은 뭘까?

“영화 속 건달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잘 몰라요. 대신 조폭은 목표는 분명하죠. 그래서 건달 영화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함’에 이끌려 세상을 떠다니는 사내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 캐릭터가 얼마나 이어질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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