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신상옥감독 '탈출기' 상영금지 논란

  • 입력 2001년 11월 15일 18시 34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반 상영 행사를 가지려던 신상옥(申相玉·81) 감독의 영화 ‘탈출기’가 국가보안법에 위배된다는 검찰의 입장 표명에 따라 이 영화의 시사회는 15일 오전 부산 대영시네마에서 영화제 관계자 20여명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영상물의 상영을 놓고 당국과 갈등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를 계기로 창작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탈출기’ 상영 행사는 아시아 정상의 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상영작이며 신 감독에 대한 ‘헌정(獻呈)’의 의미로 마련된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구태의연한 발상이 영화제에 먹칠을 했다”는 영화계의 주장과 “실정법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검찰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파행 상영되기까지〓대검찰청은 지난달 문화관광부로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 감독이 1984년 북한에 있을 때 만든 ‘탈출기’를 상영할 경우 발생할 법적 문제에 대한 유권 해석을 의뢰받았다. 대검측은 “서울고법이 1999년 ‘탈출기’가 ‘꽃파는 처녀’ 등과 함께 ‘반국가 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용으로 제작됐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판결을 내렸다”며 “상영을 강행할 경우 영화제 관계자를 형사 입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영화제측은 영화제의 ‘신상옥 감독 특별전’에서 ‘탈출기’를 제외한 9편의 영화를 상영하기로 하고 영화제 개막전에 배포한 상영작 리스트에도 ‘탈출기’를 뺐다. 그러나 영화제측은 9일 개막 직전 상영작 목록에 ‘탈출기’를 다시 넣었으나 이를 인지한 검찰측이 상영 취소를 종용한 결과, 일반 관람이 통제됐다.

▽‘탈출기’의 이적성 논란〓15일 영화제 관계자와 언론에 공개된 이 영화의 이적성 여부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 영화는 1920년을 배경으로 좌익작가 박성렬(최창수 분)이 사회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주인공이 사회주의 운동이 가족도 버릴만큼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대목 등이 실정법상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대목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으나 “전형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로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대목이 없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영화계 인사들은 대체로 이 영화가 상영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무법인 한결의 조광희(趙光熙)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려면 해당 표현물이 반국가 단체에 유리하다는 점을 입증해야하는데 부산국제영화제가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영화제측은 문제없나?〓영화제측이 검찰의 ‘탈출기’에 대한 입장과 법원의 판례를 알고 있으면서도 상영을 강행하려 한 것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대두되고 있다. 영화평론가 J씨는 “결과적으로 영화제가 검찰과 타협함으로써 상영을 안한 것만도 못한 전례를 남겼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영화제측이 검찰 입장을 알고 있었더라면 처음부터 영화 상영을 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영화제가 정부에 의존한 행사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영화감독은 “예산 27억원 중 17억원을 정부로부터 조달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재정 자립을 이뤄내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칸영화제는 화장품회사인 ‘로레알’ 등의 협찬과 각종 수익 사업으로 대부분의 재원을 스스로 충당하고 있다.

<부산〓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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