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벼워야' 뜨고 '무거우면' 죽쑨다?

  • 입력 2001년 11월 12일 18시 57분


▼상업주의-작가주의 영화 '빈익빈-부익부' 현상 심화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한국 영화가 흥행 양극화에 고심하고 있다.

전국 관객 818만명을 동원한 '친구'에 이어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가 잇따라 전국 관객 400만명을 넘기고 있는 반면, '와이키키 브라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주의' 영화들은 개봉 2주 만에 극장에서 '퇴출'당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3주동안 6만5000여명을, 지난달 13일 선보인 '고양이를 부탁해'는 한달 남짓만에 3만6000여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급기야 제작사측은 재개봉이라는 자국책을 마련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제작사인 명필름은 10일부터 서울 종로2가 '시네코아'의 한 관을 대여해 재개봉했다. 영화관 대여료는 6000만원을 지불하는 것 이외에, 객석 점유율이 40% 아래로 떨어질 경우 그 차액 입장료를 영화관측에 지불한다는 조건. '고양이를 부탁해'의 제작사인 마술피리도 영화 살리기에 나섰다. 20일 영화의 80%가 촬영된 인천에서 특별시사회를 열고 다음달 초 인천에서 재개봉할 예정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과 함께 서울에서 공동 재개봉도 추진중이다.

#편식 현상, 왜 일어나나

최근 대작 영화의 홍수 속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은 관객들에게 낯설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같은 복고풍이지만 ‘친구’는 상업적인 폭력 코드를 깔고 있는 반면. ‘와이키키…’는 3류 인생의 짐을 무겁게 다뤘다.

똑같이 20세 여성이 나오지만 빅히트한 ‘엽기적인 그녀’는 휴대전화 세대의 사랑 백태를 코믹하게 그렸다면 ‘고양이를…’는 이들의 실존적 고민에 집중한다.

스타급 배우의 출연이 성패를 좌우하는 마당에 ‘와이키키…’는 이름도 낯선 문화계 인사가 주연이다.

개봉 첫 주말 이틀 성적으로 퇴출 여부를 결정하는 살벌한 배급 시스템도 문제. 개봉 당일 ‘고양이를…’과 ‘와이키키…’ 제작자들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개봉 전 6개월동안 3만여명에게 릴레이 시사회를 열어 입소문을 기대했던 ‘와이키키…’는 첫 주말 1만4000여명에 그쳤다. 이후 극장들은 ‘와이키키…’의 퇴출 시점만 저울질했다.

#할리우드 보다 더 높은 마케팅 비용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영화 제작비를 순제작비와 마케팅비로 나눌 때, 올해 할리우드 영화 평균 비율이 2:1인데 비해 한국영화는 1.6:1로 한국영화의 마케팅 비중이 더 높다. 영화 홍보 등에 할리우드 영화보다 더 많은 비중을 부여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저예산인 ‘작가주의’ 영화들은 많은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국산 상업영화에 비해 마케팅 측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흥행 양극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올해 영화계로 들어온 투자자금은 지난해의 2배가 넘는 1800억원대. 그러나 제작 편수는 지난해 59편에 비해 고작 6편이 늘어났다. 즉 흥행이 보장되는 상업 영화에만 돈이 몰리고 있다.

#"좋은 영화"라는데 왜 흥행은…

일각에서는 ‘와이키키…’나 ‘고양이를…’이 독창적인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줬는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작가주의 영화라도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내세운다.

한 영화평론가는 “미국 영화 ‘메멘토’는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기법을 선보여 국내에서도 성공했다”며 “작가주의 영화는 소재는 물론, 영화적 구성에서 독창적인 시도를 보여줘야 하는데 두 영화는 그런 점에서 다소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배급 전략에서도 ‘와이키키…’ 등이 대작 상업영화처럼 다수의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하는 ‘와이드 릴리스’ 방식을 택한 것도 실수로 꼽히고 있다. 작가주의 영화는 상업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배급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첫 개봉에 실패한 뒤 재개봉에 들어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재개봉 첫 주말(10, 11일) 성적은 의미있다.

이 영화의 재개봉 첫 주말 관객은 지난달 개봉 첫 주말(1003명)보다 두 배 많은 2229명으로 집계됐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작가주의 영화일수록 관객이 서서히, 그것도 몇몇 한정된 극장에 몰린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배급망 확보부터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 김혜준실장은 “일본의 독립 배급사들처럼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를 자사 소유 극장에서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상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CGV(스크린 80개) ‘메가 박스’(스크린 28개) ‘롯데 시네마’(스크린 39개) 등 멀티플렉스 극장들도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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