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엔 '氣싸움'불꽃 관중석선 "오빠" 열광

  • 입력 2001년 4월 22일 19시 16분


“꺅…오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오빠’가 꾸벅 인사를 하자 환호성이 더 커진다.

인기 연예인의 콘서트 무대나 사인회? 아니다. 매일 게임대회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의 메가웹스테이션. 게이머 사상 최초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다는 임요환(21) 선수가 장내에 모습을 보이자 관중석의 반응은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뜨겁다.

◇마니아 500여명 열띤 응원

이곳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회는 매주 금요일 열리는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국내에서 200만장이 넘게 팔린 스타크래프트(스타크)를 종목으로 한 대회다.

이 대회 4강전이 열린 20일 오후 7시. 경기 시작 1시간 전인데도 경기장내 100여석의 자리는 모두 차있다.

임요환 선수를 응원하러 나왔다는 김춘옥씨(25·여·회사원)는 “임요환 선수를 가까이 보기 위해 일찍 서둘렀다”면서 “경기시작 2시간 전인 오후 6시에 도착했는데도 관람하기 좋은 곳은 이미 빈 자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얼마되지 않아 경기장 안은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경기장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400여명은 경기장 밖에 있는 중계 모니터 앞에 앉아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복 모양 화려한 유니폼

경기 시작 30분전. 게이머들이 출전을 위해 무대에 오른다. 게이머들도 패션에 꽤 신경을 쓴다. 임요환 선수는 어깨죽지를 강조한 반짝이는 흰색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4강전 상대인 박용욱(18) 선수도 검은색의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나왔다.

경기 전에 출전 선수에 대한 간단한 인터뷰가 시작됐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사회자)

“요즘 바빠서 연습을 많이 못했는데 어제 오늘 20시간 정도 연습했어요.”(임요환)

“일반적으로 임요환 선수가 우세하다는 예상이 많은데 이길 자신은 있습니까.”(사회자)

“필살기를 준비해오긴 했는데…상대편이 워낙 강해서…”(박용욱)

고3인 박용욱 선수는 많은 관중앞에 나선 것이 어색한지 머리를 제대로 들지 못한다.

오후 8시.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3판 2선승제. 웅성웅성거리던 관람석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첫 판은 예상과는 달리 박용욱 선수가 멋진 ‘리버 드롭’을 선보이며 임요환 선수의 ‘SCV’를 거의 전멸시켜 승기를 잡았다. 임요환 선수는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보지만 결국 게임을 포기하고 만다.

‘가슴이 떨린다’며 경기장이 아닌 밖에서 게임을 지켜보던 임선수의 팬클럽 회장 윤이나(18)양은 “어떡해요. 어떡해요”를 연발하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다.

◇묘기 나올때마다 "아하" 감탄사

그러나 임 선수의 저력은 무서웠다. 둘째 판을 탱크와 벌처를 동원해 힘으로 밀어부쳤다. 1대 1. 셋째판은 신중하게 진행됐다. 누가 이길지 모를 팽팽한 형세. 박용욱 선수가 조금 앞서지 않나 하는 순간 임요환 선수가 골리앗을 동원해 박용욱 선수의 캐리어를 제거해나가자 관중석에선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임요환 선수의 승리. 임요환 선수는 얼굴이 붉게 물든채 연신 부채질을 했고 패자인 박용욱 선수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도 닦지 못한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승패의 명암은 분명했다.

임 선수는 그 뒤 70∼80여명의 팬들에게 둘러싸여 사인을 해준 반면 박 선수는 화장실에서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박스기사>:인기 프로게이머 임요환

임요환 선수. 국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로게이머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있는 그의 팬클럽 회원 수는 7000명을 넘어섰다.

180㎝의 키에 준수한 용모도 인기의 한 요인이지만 그보다는 스타크래프트(스타크) 중 가장 어렵고 손이 많이 간다는 ‘테란’(인간 종족)으로 무적의 실력을 보여주는 점이 팬들을 열광케 한다. 별명은 ‘테란의 황제’.

이번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그는 4강에 올라오기 전까지 무려 12연승을 거뒀다. 300만 명에 이르는 스타크의 유저 가운데 초절정 고수 급에 해당하는 프로게이머는 0.01%인 약 300명. 이들의 도전을 물리치며 12연승을 거둔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

게임 해설가 엄재경씨는 “역대 프로게이머 중 천재성이 가장 돋보이는 선수”라며 “예상을 깨는 기발한 전략을 구사해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고 말했다.

그의 실력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피나는 훈련 덕분. 한 번 지면 이기는 전략을 발견할 때까지 24시간이고 48시간이고 컴퓨터와 씨름한다.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생 게임과 함께 하고 싶어요. 게이머를 그만두면 게임을 개발하는 기획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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