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앞에 곤혹스런 검찰…음란물처벌 여부놓고 고심

  • 입력 2000년 2월 28일 19시 52분


영화 ‘거짓말’의 음란성 여부를 수사 중인 검찰이 최종 판단을 앞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 영화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어떤 결론을 내려도 다른 한쪽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부담 때문인지 1월 6일 ‘음란폭력조장매체 공동대책 시민단체협의회’(음대협)의 고발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고발인 참고인 피고발인 조사를 모두 마쳤지만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고 2월 21일자 검찰 정기 인사 때는 수사팀마저 바뀌고 말았다. 새 수사팀은 기록 검토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생각이지만 워낙 예민한 사건이어서 제작자나 감독을 재소환할 엄두를 못 내는 분위기.

‘거짓말’에 대한 수사를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은 음대협이 ‘음란하다’고 고발한 영화의 주요 장면이 실제 영화 상영본에서는 대부분 삭제돼 있기 때문.

‘거짓말’측 변호인은 “고발된 것은 불법 유통된 CD이다. 상영된 영화는 원본에서 논란이 될 만한 5∼170초짜리 24장면(17분 분량)을 삭제했기 때문에 음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음대협측은 “원본을 고발한 것은 영화 개봉일(1월 8일) 전이었기 때문에이다. 개봉된 영화도 음란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원본과 상영본 모두 수사대상이 된다는 입장. 법조계 일각에서는 “권위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를 통과하고 이미 115만명이 관람한 국내 상영본에 대해서는 음란성 판정을 내리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불법으로 복제돼 유통됐고 해외로는 총액 60만달러에 수출된 원본은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것.

한 변호사는 “현행 형법은 음란한 필름을 수출한 자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원본의 음란성이 인정된다면 법률상으로는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그러나 검찰이 외화를 벌어들인 국산 영화를 처벌하는 ‘모험’을 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편 ‘거짓말’의 비디오 판권이 있는 S사는 최근 ‘비디오를 출시하면 S사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음대협측의 항의 공문을 받고 2월말로 예정됐던 출시를 일단 보류하고 검찰의 판단을 지켜보기로 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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