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일요베스트' 추억과 현실의 거리감 잔잔히 묘사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57분


그동안 KBS2 단막극 ‘일요베스트’(일 밤10·00)가 주목한 소재 중 하나는 일상에 대한 관찰이었다. 9일 방송된 ‘추억’ 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제를 달자면 ‘이 시대 평균적 중년의 추억에 대한 한 보고서’ 쯤 되겠다.

극 중 두 중년 윤지원(김규철 분)과 김민서(김서라)는 한때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지만 헤어진 후 별 탈없이 살고 있다. 지원은 잡지사 기자로, 민서는 사진작가의 꿈은 접었지만 서울 교외에서 시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는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각각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지원은 독자들의 추억을 수기 형식으로 공모하고, 그 사연 중 하나로 민서의 글을 접한다. 내용은 둘의 옛 추억. 지원은 반가움에 그길로 민서를 찾아가고 간경화로 투병 중인 남편의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사진 작가의 꿈을 접은 민서를 보고 옛 감정이 살아남을 느낀다. 각박한 현실이 힘들었던 민서도 지원이 반가울 따름이고, 둘은 다시 만난다.

언뜻 드라마는 일상의 도피를 꿈꾸는, 매너리즘에 빠진 두 중년 남녀의 ‘밀회’를 그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는 “남편의 병원비가 없어 수기 공모 당선금인 1000만원이 필요해 너를 만나고 있다”는 민서의 말로 잔잔히 이어가던 플롯의 흐름을 틀어놓는다. 민서의 이 말이 돈을 노린 의도적 접근이었는지, 아니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워 관계를 중도에서 포기하기 위해서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추억도 현실적인 이유로 ‘흥정의 도마’ 위에 올려졌다는, 양쪽 모두에게 개운치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에 지원이 직접 민서에게 당선금을 전하는 장면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머플러가 잘 어울린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 시대의 평균적인 중년의 상처를 그리려던 드라마가 얼핏 겨울 어느 날의 해프닝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요소를 갖춰 아쉬웠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