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 스테이지]‘장르퓨전’ 외면한 국내 클래식계

  • 입력 1999년 11월 2일 19시 48분


얼마전 음반 ‘가요 바이올린’이 눈에 띄었다. ‘그리움만 쌓이네’ 등 히트 가요 40여 곡을 연주해 세 장의 CD에 담은,이른바 ‘장르퓨전’ 음반이었다.

연주 내용이 클래식연주자가 가요를 색다르게 해석한 듯해 당장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런데 매니저 K씨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는 “연주자가 클래식을 공부한 사람으로 이런 음반을 냈다는 게 알려지면 낭패를 당한다며 인터뷰를 극구 피한다”고 했다. 연주자는 유학한 뒤 갓 귀국해 대학강사 자리를 구하는 Q씨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하면서 서글픔이 앞섰다. 국내 클래식계가 이토록 꽉 막힌 곳인가. 하긴 가수 조용필이 12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에 일부 성악가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또 테너 박인수가 가수 이동원과 ‘향수’를 부른 뒤 클래식계에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Q씨가 굳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분위기는 짐작할 만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클래식+대중음악’의 장르퓨전은 세기말 문화계의 보편적인 추세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로커 스팅이한무대에서서같은 ‘가수’라며 어깨동무하는 시대다.

다음 세기에는 잡종이든 변종이든 새로운 장르가 부각돼 추종 세력을 끌어 모을 조짐도 보이고 있다.

젊은 예술인 가운데 기존 장르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이런 갈증 때문이다. 음반 ‘가요 바이올린’도 마찬가지다.

전기바이올린 연주자 유진박이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퓨전 무대’에서 곧잘 하는 말 한 마디를 새겨 봄 직하다.

“음악은 자유다!”

〈허 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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