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성이 EBS, 협찬금-공영성 줄타기

  • 입력 1999년 8월 22일 19시 00분


“돈이 없으니 협찬이 불가피하고 그러다보니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판다는 비난을 들어야 하고….”

한 EBS PD의 ‘푸념’이다. EBS가 과도한 협찬 따기로 파행 편성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EBS는 일선 PD들에게 모두 20억원의 협찬금을 할당하고 협찬사에 아예 방송 시간을 내주다시피 하고 있다. 또 협찬이 없는 프로그램은 협찬을 붙이거나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EBS는 최근 9월부터 매일 오전6시부터 30분간 방영하는 ‘자격증을 땁시다’에 ‘공인중개사 TV 강좌’를 1주일에 3일이나 편성했다. 방영기간도 6개월로 무려 78편. 이유는 협찬 때문이다. ‘공인중개사…’는 특정 출판사의 책을 교재로 하며, 이 출판사는 편당 330만원의 협찬금을 내기로 했다. EBS 노조는 이에 대해 “공영방송의 채널이 단돈 330만원에 팔렸다”고 자조적인 성명서를 냈다.

알찬 대학가 프로그램으로 돋보였던 ‘대학가 중계’도 협찬 부담 때문에 내용의 일부를 바꾸었다. 협찬이 쉬운 대학 홍보나 진학 정보 등을 다루는 코너를 신설한 것. ‘경제교육’ 등 경제교육 프로그램은 협찬이 어렵다는 이유로 폐지된 상태.

EBS가 이처럼 협찬 따기 총력전에 나선 까닭은 재정난 때문이다. 지상파 1개, 위성TV 2개 채널, 라디오 1채널 등 4개 채널의 99년 지출액이 577억원. 정부 출연금은 133억원에 불과해 나머지 444억원은 교재인세수입이나 협찬으로 자체 충당해야 한다.

EBS는 특히 이번 국회에서 안정적 재원 확보 등의 기초를 마련한 ‘교육방송공사법안’이 통합방송법안에 묶여 통과되지 못하자 내년에도 빚투성이 살림을 벗어날 수 없어 걱정이 태산이다.

EBS 노조의 한 관계자는 “쪼들리는 살림살이로 인한 협찬 우선 편성이 공영 방송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다”면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방송 시간 단축 등의 방안을 강구해봄직하다”고 말했다.

〈허 엽기자〉he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