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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7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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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사 PD들 사이에 SBS 드라마 ‘토마토’(수목 밤9·55)는 ‘연구대상’이다. 이 드라마가 ‘미스터 Q’의 아류작 또는 완성도가 형편없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51.5%가 넘는 시청률로 3주째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50%가 넘는 시청률은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화제작임을 보여주는 수치였다.
KBS2 ‘첫사랑’(65.8%) MBC ‘사랑이 뭐길래’(64.9%) SBS ‘모래시계’(64.5%)는 역대 드라마 회당 시청률에서 1∼3위를 기록한 작품들이다. 이 드라마들은 나름대로 잘 짜여진 이야기(작가)와 세련된 연출(PD), 뛰어난 연기력(연기자) 등 전통적인 ‘흥행의 3박자’를 갖췄다.
그런데 ‘토마토’는 다르다. ‘모래시계’의 김종학PD는 “최근 시청률이 높다는 드라마를 보면 전통적인 흥행요소외에도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역대 히트작을 만든 ‘스타급’ PD와 작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지나면서 시청자들의 정서가 달라져 히트공식도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한 게 최고〓“IMF로 살기가 힘들어져서 그런지 복잡하게 꼬인 이야기는 시청자 반응을 얻기 어렵다.”(‘서울의 달’의 작가 김운경)
‘콩쥐팥쥐’(권선징악) ‘왕자와 거지’(뒤바뀐 운명) ‘로미오와 줄리엣’(비극적 사랑) 등 고전적 이야기의 뼈대가 빤히 드러나는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식적인 삼각관계로 성공한 SBS ‘청춘의 덫’(53%) ‘토마토’의 성공과 MBC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낮은 시청률(11.4%)은 대조적이다. ‘우리가…’는 스타(배용준 김혜수) 작가(노희경) 연출(박종PD)의 흥행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시청자의 감정선에 눈높이를 맞추지 않은 작가의 일방적인 사랑학 강의로 일부 ‘컬트 팬’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했다는 평가.
▽꿈과 영웅을 만들어라〓MBC ‘그대 그리고 나’의 작가 김정수는 “IMF시대에 이것만큼 드라마의 효과적인 흥행포인트는 없다”며 “평범한 여성이 사랑을 쟁취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SBS ‘토마토’는 이같은 시청자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 ‘왕초’의 김춘삼은 또다른 영웅상. “드라마 속 김춘삼은 비록 거지지만 거침없이 삶을 살아가는 영웅 아니냐. 또 거지집단에서 뽑아낼 수 있는 독특한 유대감은 자기 책상 지키기에 바쁜 IMF시대의 남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김종학PD)
▽만화 다시 보기〓KBS내에서는 최근 신세대 사이에 인기를 얻은 만화들을 다시 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인기나 ‘작품성’이 검증된 만화들은 드라마의 좋은 모델이기 때문이다. ‘용의 눈물’의 기획자인 KBS드라마국 윤흥식주간은 “‘미스터 Q’ ‘토마토’도 만화적 캐릭터를 살려 인기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살기 고단할수록 피터팬 신드롬(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심리적 증후군)에 빠져드는 시청자들에게 만화 특유의 단순명쾌한 전개, 선악 구분이 뚜렷한 등장인물, 그리고 권선징악의 결론은 상쾌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풀이.
▽빛나는 조역 만들기〓SBS ‘은실이’에 출연중인 조역들의 인기는 예상밖의 일. 이 드라마는 방영초 아역들을 중심으로 한 복고풍에 무게중심을 뒀지만 성동일 정웅인 등 ‘웃기는 조역’들이 인기를 얻자 아예 주인공과 조역의 비중을 뒤바꿨다. 이 대신 잇몸으로 흥행에 성공한 셈.
▽그래도 스타는 있어야〓MBC ‘애인’ ‘신데렐라’의 이창순PD는 “솔직히 한주에 30여편이 쏟아지는 ‘드라마 전쟁’에서 신인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할 자신은 없다”며 “스타 출연 자체가 드라마의 효과적인 홍보”라고 말했다. ‘토마토’와 ‘왕초’도 각각 김희선과 차인표라는 스타의 캐릭터와 인기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 방송진흥원 하윤금박사는 “방송사측이 시청률을 겨냥해 비슷비슷한 드라마를 양산하기 보다는 다양한 소재의 드라마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갑식·이승헌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