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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4월 18일 2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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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영화 「롤라런」
‘20분안에 돈을 구해오지 못하면 애인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그 애인을 구하려고 미친 듯 뛰어다니는 여자.’ 아주 단순한 이야기의 골격. 그러나 독일의 톰 티크베어 감독(33)은 앙상한 뼈대에 기발한 방식으로 살을 붙여 그야말로 재기발랄한 영화 ‘롤라 런’을 만들어냈다.
영화 초반 ‘한 게임의 끝은 다른 게임의 시작’이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20분만 지나면 분명해진다. 데드라인에 이르러 상황이 종료되자 “떠나고 싶지 않아”하는 주인공 롤라(프란카 포텐테 분)의 중얼거림과 함께 영화는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20분의 긴급상황’은 세차례 되풀이되지만 이 ‘돌림노래’에는 ‘변주’가 많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롤라의 출발지와 경로, 도착지는 모두 같아도 길에서의 우연한 스침, 작은 선택이 결과를 통째로 뒤바꿔 놓는다. 롤라뿐 아니라 그를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의 ‘그 후’, 우연과 찰나에 좌우되는 짖궂은 운명을 정지화면의 빠른 연속편집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카메라의 현란한 기교, 애니메이션, 화면분할, 비디오화면의 사용 등 다양하고 감각적인 테크닉이 줄곧 시선을 붙잡는다. 그 중에서도 이 영화를 강렬하게 만드는 것은 음악. 감독 스스로 “음악+이미지가 영화”라 말했듯 쉴새없이 쿵쾅대는 테크노 댄스 음악은 관객들이 롤라와 함께 뛰는 것처럼 아찔한 속도감을 느끼게 만든다.
▼덴마크 영화 「셀레브레이션」
요즘같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일체의 인위적인 효과를 사용하지 말고 6㎜ 디지털 카메라로만 영화를 찍으라고 한다면? 시대에 역행하는 원시적 방법인 것같지만 덴마크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30)가 그렇게 만든 ‘셀레브레이션’은 사뭇 도전적이다.
그의 독특한 영화제작 방식은 95년 덴마크에서 유명 감독 라스 폰 트리에와 함께 발표한 ‘도그마’선언에 입각한 것. ‘도그마’는 ‘화장술’만 발달한 영화에 반대하며 영화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취지의 선언이다.
인위적인 장치와 효과를 배제하고 영화를 만들자는 ‘도그마’의 서약에 충실한 ‘셀레브레이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속박이 창의성을 되레 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변화무쌍한 카메라의 각도, 들고 찍은 탓에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은 등장인물들의 감정, 관계의 변화를 전달하는데 더없이 효과적이다. 조명으로 자연광과 샹들리에, 촛불 등을 이용한 덕택에 이 영화는 기록영화같기도 하고 괴담같기도 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작방식뿐 아니라 내용도 도발적. 아버지의 생일에 한데 모인 가족. 그러나 생일파티 석상에서 장남은 아버지의 악덕을 폭로하고 이 가족은 손댈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아 간다. 할리우드식 영화의 구조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이 모두 낯설 수 있을 듯.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