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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2월 4일 0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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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으레 등장해온 ‘톱10’류의 프로는 방송이 가장 애용하는 기법 중 하나. 한해동안 특정분야의 가장 두드러진 ‘히트작’을 앞세워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흐릿해진 20세기 각 분야의 톱10을, 그것도 매주 잡아낸다는 것이 제작진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KBS 2TV ‘20세기 한국톱10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제작사인 독립프로덕션 ‘제3비전’이 지금까지 11회 방영 동안 소개한 아이템은 스포츠 명장면부터 귀화 외국인, 한국언론 특종사까지 거의 전부문에 걸쳐 있다.
소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번갈아 배치해 시청자들을 싫증나지 않게 하는 것도 재치있다.
명판결 톱10과 많이 팔린 국산담배 톱10을 번갈아 배치하는 식이다. 이런 ‘운용의 묘’와 감각적인 아이템 덕에 시청률은 외주 교양프로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12%대.
방영시간도 당초 목요일 밤12시였다가 토요일 오후5시25분으로, 이번 주부터는 일요일 오전11시로 옮겨지는 등 3개월간 두번이나 ‘영전(榮轉)’했을 정도다.
하지만 시청률이 뛰는 만큼 제작과정에서 신경쓸 일도 많아졌다. 우선 방송이 나간 후 톱10 선정과정의 ‘투명성’에 대해 관련단체 등의 항의가 잦아졌다는 것이 장강복PD의 전언.
특히 값과 직결될 수 있는 건축물의 경우 방영직후 톱10에 들지못한 건축물 소유자의 항의가 만만치 않았다.
지난주 방영된 한국매스컴 특종 톱10의 경우 특정 언론사에 치우치지 않도록 선정위원들에게 신신당부했을 정도. 이처럼 ‘민감한’ 소재의 경우 제작진은 순위없이 ‘10걸’이라는 점만 부각시키거나 갖가지 에피소드 소개에 시간을 할애하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선정위원의 작업도 쉽지않다. 자칫하면 선정위원이 이해관계에 얽힐 수 있기 때문.
이번주에 방영될 한국영화 명장면 톱10의 경우 제작진은 일단 현역 영화감독을 배제하고 영화평론가협회 소속 각 평론가들에게 10명의 선정위원을 의뢰, 그 가운데 ‘교집합’에 해당하는 인물들로 추려냈다.
그러나 선정위원으로 위촉된 한 원로감독은 영상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나운규의 ‘아리랑’ 등은 화면 제작상 톱10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제작진의 말에 “어떻게 ‘아리랑’을 빼고 한국영화를 논할 수 있느냐”며 촬영막판에 선정작업을 거부, 제작진이 부랴부랴 다른 평론가로 대체하기도 했다.
〈이승헌기자〉yengl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