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이다. 기존 음반 제작과 유통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상업적 관행의 굴레로부터. 대중음악계 독립(인디)음반들이 꼿꼿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2년여 전부터 펑크 밴드들이 컬트 성격의 라이브를 통해 「독립」을 주창하고 있는데 이어 이번에는 기성 가수들도 「독립」 음반에 참여하고 나섰다.》
음반 「도시락(圖詩樂) 특공대」(레이블은 도시락).
여기에는 김창완 강산에 이상은 등 기존 스타를 비롯해 「황신혜 밴드」 「삐삐롱 스타킹」 「어어부의 장영규 황보령 원일」 등이 합세했다. 이들은 대중 음악에 대한 실험적 태도와 다양한 스펙트럼을 추구한다는데 입을 맞추고 한 음반에 한 뜻을 담았다. 각각 지니고 있는 색깔의 차이는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만난 것은 96년 11월. 이때부터 국내 음반시장의 메커니즘에 대한 게릴라적 반란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황신혜 밴드」의 김형태는 『선후배 사이로 만나 예술로서의 대중음악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면서 첫 모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음반 「원데이 투어스」도 같은 성격의 음반. 「강아지 문화/예술」이란 레이블로 나왔다. 「삐삐롱 스타킹」의 권병준(일명 고구마)이 「주동」이 되어 모델 출신의 최희경, 펑크 그룹 「옐로 키친」, 원종우 1인 밴드인 「배드 테이스트」, 갱스터그룹 「갱톨릭」 등을 규합했다.
그런데 왜 「독립」일까.
강산에 등 독립론자들은 『기존 음악시장에서 도저히 통할 수 없는 실험적 음악을 위해서』라며 『자본과 판매의 굴레를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고 싶다』고 말한다. 기존 상업적 시각으로는 엄두도 못내는 음반을 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따라 붙는 조건이 저예산 제작과 대안적 유통망. 기존 음반제작비의 10%도 안되는 돈으로 자기 음반을 제작하고 홍보와 판매 또한 기존 메커니즘을 통하지도 않고 그쪽에서도 반기지도 않는다.
「도시락 특공대」는 1천여만원의 제작비를 들였다. 「원데이 투어스」는 불과 3백15만원. 2만∼3만장만 팔리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비용이다.
김창완은 『기존 시장에 비해 한줌에 불과하지만 싸게 제작하고 가수들 맘대로 노래할 수 있다』며 『예술가로서 이런 자유는 그야말로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에서 독립 음반은 쉽지 않다. 저예산은 추렴을 통해서, 음반의 실험성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유통과 홍보는 내부의 공모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그래서 「원데이 투어스」는 삼성뮤직의 유통채널에 편승했고 「도시락 특공대」도 역시 기존 음반기획사인 동아기획의 유통과 홍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절반의 독립」인 셈이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독립 음반은 음악에 대한 철학과 태도, 저예산 작업 등이 하나의 커다란 물결을 이뤄 주류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다』며 『인디 레이블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라이브 클럽의 활성화나 팬들의 인식 등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해외에선 ▼
팝계에서 인디 레이블의 시작을 50년대 중반 「머디 워터스」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는 인디라기 보다 마이너 레이블이 더 정확한 표현.
저예산과 실험성 등을 내세우는 인디 레이블은 영국의 경우 70년대 「섹스 피스톨스」 등에서 출발하며 미국은 80년대 초반부터 「R.E.M」 「소닉 유스」 등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쏟아져 나왔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주목을 받았던 「R.E.M」은 얼터너티브의 맏형으로 손꼽힌다.
이후 그룹 「너바나」 「펄 잼」 등 90년대 초반 록의 한줄기를 이루었던 얼터너티브 그룹은 대부분 인디 출신으로 나중에 세계적 스타가 되기도 했다.
록계의 유명 그룹들은 인디에서 출발, 메이저사로 옮겨가는 게 통상적인 관례다. 메이저 자본이 인디의 실험성과 도전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끝까지 인디로 남겠다고 외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음반을 내는 행위가 많은 사람들과 음악세계를 공유하자는 것』이라며 메이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요즘도 그룹 「오프 스프링」 등을 배출한 에피타프가 유명 인디 레이블이지만 메이저가 자본을 대고 있다는 설이 있어 「참 인디」가 아니라는 의심도 받는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팝계에서 인디의 의미에 대해 『인디는 비주류이면서 반주류』라며 『팝음악이 상업성으로 부패할 때마다 인디의 반격이 전개돼 왔다』고 말한다.
〈허 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