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선거」이대로 좋은가]별일 다하는 대선후보들

  • 입력 1997년 9월 8일 19시 55분


최근 각 당 대선후보가 TV에 출연,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심지어는 앞치마를 두르고 찌개나 라면을 끓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대표는 4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음식배달원 노릇을 했고,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는 남대문시장에서 노상 옷장수로,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는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짐나르는 근로자로 변신했다. 대선후보들의 이같은 「별난 짓」은 물론 각 TV사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요즘 TV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대선후보들을 주부를 대상으로 한 토크쇼나 오락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있다. 대선후보들도 오직 표를 얻기 위해 이에 기꺼이 호응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방송사측은 『각 후보들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의 클린턴대통령도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TV에 출연, 색소폰을 연주한 사실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선후보들이 TV오락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것은 대부분 사전 각본에 따른 「연기」라는 데 있다. 각 후보의 인간적인 면모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TV프로그램이 대통령선거의 의미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각 TV방송국이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대선후보들을 출연시켜 「연기」를 시킴으로써 각 후보의 대통령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따지기보다는 탤런트적인 재주에 따라 유권자의 표가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가수는 무엇보다 가창력을 보고 뽑아야 하는데 잘못하면 가창력은 제쳐두고 몸을 잘 흔드는 비디오형가수를 뽑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희대 신방과 이동신(李東信)교수는 『대선후보가 TV에서 짐을 날랐다고 해서 평상시에도 짐을 나르겠느냐』며 『정치인들을 탤런트화하는 것은 자질검증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상업성이라는 TV의 역기능만을 부채질할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영화와 미디어이론을 전공한 김윤재(金潤在)씨는 『주부대상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오락화하면 오히려 주부들의 건전한 판단력을 차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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