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50년 한국 반도체 격변
1970년대 단순 조립으로 출발
故 이병철 회장이 국산화 시작
현재 삼성-SK, HBM 선두 경쟁… “생태계 선점이 성패 가를 것”
한국 반도체 산업은 1970년대 외국계 자본에 의존한 단순 조립 생산에서 출발했다. 아남산업이 1968년 조립 사업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 금성반도체, 1974년 삼성전자의 전신인 한국반도체가 잇달아 뛰어들면서 미국 기업과 협력해 반도체를 조립, 수출하는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본격적인 독자 생산의 전환점은 1983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이었다. 이 회장이 나서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대규모 투자가 단행되며 같은 해 12월 국내 최초로 64K D램을 국산화했고, 1986년 현대전자도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는 한국 반도체가 기술력과 양산 역량에서 대도약을 이룬 시기다. 삼성전자는 매일 오후 11시에 임직원이 모여 하루 성과를 점검하고 다음 날 일정을 짜는 ‘일레븐 미팅’과 매주 수요일 반도체 설계, 공정부터 경쟁사 기술까지 회사 미래를 논의하는 ‘수요 공정회의’로 경쟁력을 키웠다. 그 결과 1992년 D램 시장 매출 세계 1위에 올랐고, 1994년 일본에 앞서 256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기술 주도권을 잡았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하는 초대형 구조조정을 겪었으나, 이는 양적 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미세공정 기술을 고도화하고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 반도체는 2010년대 구조 재편을 거쳐 새로운 도약기를 맞았다. 현대전자는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하이닉스반도체로 탈바꿈했고, 2012년 SK그룹에 인수되면서 SK하이닉스로 재출범했다. SK그룹의 과감한 투자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와 함께 메모리 시장의 글로벌 양강으로 서는 발판이 됐다. SK하이닉스가 부상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D램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 위해 반도체 설계를 맡는 시스템LSI 부문을 지속적으로 육성했고, 2017년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독립 부서로 신설해 비메모리 분야 공략에 속도를 냈다.
2020년대 들어 반도체 산업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부상과 함께 급격한 지각변동을 맞고 있다. 과거 소모품 성격이 짙었던 범용 D램은 AI 가속기의 막대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하기 위해 고대역폭메모리(HBM)라는 맞춤형 고성능 제품으로 진화했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초기 시장을 선점했고 삼성전자가 6세대 제품(HBM4)에서 따라잡으면서 격렬한 선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미중 패권 경쟁 속 공급망 불안과 글로벌 경쟁사들의 거센 추격에 직면한 상황이다. 지난 반세기 역사가 밤낮없이 미세공정의 한계를 돌파하고 선두 업체를 추격하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성패는 판을 바꾸는 새로운 생태계 선점에 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