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전기본, 2038년 재생에너지 설비 4배 확충해도 10GW 전력 부족
신규 10GW 원전 건설은 논란 속 지연…재생에너지 4배 확충도 난항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접견을 하고 있다. 2025.12.5. 대통령실 제공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한국 인공지능(AI) 기술·산업의 결정적인 약점으로 ‘에너지’를 꼽았다. 한국에 글로벌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구축을 발표하고 있으나, 그 규모가 작은 것은 전력 공급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 회장의 ‘에너지 병목’ 지적은 한국 전력·전력시장의 미래 대비 상황이 충분한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8일 대통령실과 업계에 따르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5일 손정의 회장 방한 관련 브리핑에서 “초인공지능(ASI) 시대를 구현하는 데 메모리 반도체 공급과 에너지가 ‘병목’ 지점이라는 게 손 회장의 설명”이라고 밝혔다.
손 회장은 미국 등에서 추진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ASI 구현을 위해서는 막대한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이를 작동시킬 에너지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 신청해도 36%는 이미 공급 부족 상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소프트뱅크와 오픈AI의 합작으로 추진되는 미국의 AI 인프라 프로젝트로, 필요 전력은 5~10GW(기가와트)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1GW급 대형 원전을 기준으로 하면 5~10기 안팎의 원자로가 데이터센터 전용으로 필요한 규모다.
10GW는 스위스의 최대 전력과 맞먹거나 상회하는 규모로 한국의 2023년 최대전력(98.3GW)과 비교하면 약 10%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데이터센터 입지 계획이 늘어나면서 관련 전력 수요가 예상치를 빠르게 추월하고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의 최대 전력 추가 수요는 2025년 0.5GW이지만 2027년 1.5GW, 2030년 2.3GW, 2036년 3.9GW, 2038년 4.4GW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됐다.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한국전력에 전기 사용 의사를 표시하는 ‘전기 사용신청’은 오는 2027년 7343㎿(메가와트)이지만 공급 가능 규모는 4718㎿에 그친다. 약 36%인 2625㎿(2.6GW)에 달하는 데이터센터용 전기가 이미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필요 전력이 과다 신청됐을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병목이 발생하는 셈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냉방 수요 증가,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수송 부문의 전기화 추세를 고려하면 전력 수요량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가 이미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건설된다는 점도 문제다. 발전 시설이 있더라도 송전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정적인 공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올여름 전력수요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 8일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 뒤로 송전탑이 보이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전력수요(1시간 평균)는 9만3615MW를 기록하며 역대 여름철 최대치를 경신했다. 2023.8.8/뉴스1
11차 전기본 “재생에너지 4배 늘려도 원전 필요”…일부는 12차 전기본으로 ‘유보’
문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발전 설비, 전력망 확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3년 30GW 규모인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가 2038년 121.9GW로 늘어난다는 시나리오에서도 2038년에는 10.3GW 규모의 신규 발전 설비가 있어야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이를 감안해 11차 전기본에서는 2기의 대형 원전·소형모듈원전(3.5GW), 열병합 발전소(2.2GW), 무탄소 전원 입찰 시장 개설을 통한 확보(1.5GW) 등 7.2GW의 설비 확충을 계획했고, 나머지(3.1GW)에 대해서는 계획 유보를 결정했다.
이미 필요 설비 대비 일부가 계획 유보로 불안정성이 있는 상황에서 원자력 부지 선정이 미뤄지며, 앞으로의 전력 공급 안정성은 불확실한 상태다.
아울러 11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공급 대폭 확대’ 가정 역시 더디게 실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에너지 경제 및 금융 분석 연구소(IEEFA)에 따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6배 증가했으나, 실제 발전은 3배만 증가했다.
주로 남부 지방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가 주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전송되지 못하고, 전력 시장 구조도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IEEFA가 6월 발간한 ‘한국 재생에너지 통합의 병목 현상’ 보고서에는 △지역 사회의 송전선로 갈등 △한국전력공사의 재정적 제약에 따른 사업 추진의 어려움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유도하지 못하는 정책 등을 문제로 꼽았다.
한편, 정부는 이달부터 2040년까지의 전력 정책을 담은 ‘12차 전기본’ 수립에 착수했다.
전기본은 중장기 전력 수요 추정, 발전 설비 현황·확충 전망, 정부 정책 기조 등을 감안해 마련되는 만큼, AI·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첨단 산업의 전력 수요 급증이 12차 전기본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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