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국가경쟁력의 상징이었던 철강은 통상 이슈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세계 철강 시장은 구조적인 공급 과잉 문제에 직면했다. 특히 중국발 공급과잉은 글로벌 무역 이슈로 확산하고 있으며 한국산 철강에 대해서도 20개국에서 87건의 반덤핑·상계관세 등 무역규제 조치가 적용되고 있다.
이 와중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기존 철강 관세 예외 조치를 폐지하고 모든 수입 철강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철강 면세 쿼터(연간 263만 t)가 폐기된 한국은 약 29억 달러 규모의 대미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성 없는 전쟁’과 다를 바 없는 위기 속에서 국내 철강 산업은 생존을 위한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 우선 미국 산업이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수출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 철강업계와의 협력적 관계를 강화하고, 미국 시장 내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양국 간 공급망 강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 철강은 미국 내 배터리, 자동차, 건설 등 핵심 산업과 긴밀한 연계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연계를 확대하는 동시에 미국 철강 산업과의 전략적 투자도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제3국 제품의 환적 거점이라는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무역 시장을 조성하는 데도 앞장서야 한다. 국제 무역 규범을 준수하며, 불공정 무역에 대한 대응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장차관급 고위직이 연이어 미국을 방문하며 양국 간 합의점 모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대화를 지속하는 한편으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국내 철강 산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내부적 자구책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철강 업계는 변화된 글로벌 환경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수출 및 투자 전략을 과감히 재편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필수적이다. 안정적인 수출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 확대는 물론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및 소재 기술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정책 수립과 불공정 수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철강·알루미늄 통상 리스크 및 불공정 수입 대응 방안’은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는 이 계획을 신속하게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수출 장벽을 극복하고 불공정 수입에 대한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정부의 각 부처와 관련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일사불란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장기적 준비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정부는 1월 민간과 협력해 철강산업의 미래 청사진을 설계하기 위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이는 당면한 위기 대응을 넘어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철강은 우리 경제의 기반 산업으로, 이를 빼고 한국 경제를 논할 수 없다. 이제 철강산업의 백년대계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정부와 업계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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