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산업, 돈 몰리는데 공장 돌릴 사람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7일 03시 00분


美 반도체 전문인력 확보 ‘별따기’
2029년 14만명 이상 부족할 듯
각국 기업들 ‘인재 쟁탈전’ 가열
대미투자 확대 한국기업들 고심

“무턱대고 투자했다간 공장만 짓고 생산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 반도체 산업은 첨단 공정을 뒷받침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국내의 한 반도체 기업 임원이 전한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주요 제조국에 대한 미국의 투자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정작 인력 문제가 대미 반도체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각국의 반도체 인재 쟁탈전도 거세지고 있다.

26일 반도체 업계 및 글로벌 컨설턴트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미국에서 부족한 반도체 인력이 2029년이 되면 최대 14만5000명(2024년 기준 산정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수치엔 최근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미국에서 발표한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투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투자로만 반도체 전문인력 6150∼7650명이 필요하다. 앞으로 반도체 인력 부족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 발효한 ‘칩스법’(반도체 및 과학법)을 “재정 낭비” “폐지해야 한다”고 비판하며 집행에 제동을 거는 것도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칩스법에는 반도체 인력 양성 프로그램 지원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최승혁 맥킨지 한국 파트너는 “지난해도 반도체 기술자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인력 수가 목표 수준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며 “미국의 반도체 인력난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인력 부족 현상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까지 국내에서도 5만4000명의 반도체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 유럽이나 아시아 주요국 역시 글로벌 반도체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산 시설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재 수급에 애로를 겪고 있다. 이처럼 ‘인력 가뭄’ 현상이 심화되면서 기업 간, 국가 간 인력 쟁탈전도 거세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삼성, SK를 바짝 추격 중인 미국 마이크론과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한국의 반도체 핵심 인력들을 빼가는 실정이다.

반도체 인력 부족은 국내 기업들이 섣불리 미국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가뜩이나 국내에서도 전문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미국 시설을 늘렸다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TSMC 등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들은 인력난으로 공장 가동을 연기하거나 부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미 투자 확대가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인력 공동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안기현 반도체협회 전무는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TSMC, 삼성, SK 등 주요 제조사들이 자국 인력을 끌어다 미국에서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게 가장 우려되는 리스크”라고 전망했다. 이미 한국에서도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SK하이닉스가 인디애나주에 각각 370억 달러와 38억7000만 달러 규모의 신규 생산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현 상태로는 미국이 자국에 적합한 반도체 인재를 내부 양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한국, 대만, 일본 등에서 인력을 수급하는 단기 정책이 추진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미국#반도체#반도체 인력#칩스법#반도체 인력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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