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주도 개발사업 활성화하려면 ‘숨은 규제’ 뿌리 뽑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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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사이드] 기부채납 등 이행 기준 과도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 완화를

정부가 도시개발사업 및 정비사업 규제 완화 대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 및 건설 현장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도시의 낙후된 지역이나 낡은 주택에서 생활의 불편함을 견디며 지내던 주민들도 정비사업 활성화로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자산 가치가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국민이 새집을 찾아 도시 외곽으로 나가지 않도록 도시 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재개발·재건축사업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해 관련한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국토교통부는 2023년 주택시장의 과도한 규제 정상화, 도시계획 혁신,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정 시행 등을 발표했다.

조현준 국토교통부 도심주택공급총괄과장은 지난 18일 ‘도심복합 활성화 및 노후계획도시 정비 제도 개편 필요성’을 주제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도시 내 다양한 개발 수요를 충족하고 일자리 창출 등 도시경쟁력 강화와 주거지 정비를 촉진하기 위해 민간 주도 도심복합사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공공민간 협력 방식의 도심복합사업이 활성화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 시 공공기여(기부채납)의 범위 확대 및 산정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그동안 민간사업자가 토지를 정리하기 쉽지 않아 인허가는 물론 토지 수용 문제가 발목을 잡아 사업이 지지부진한 점을 지적하며 공공 위주로 토지를 확보한 후 민간사업자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대책에 관련 업계 및 개발 예정 주민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지만 실제 혜택을 언제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 우려도 크다. 장밋빛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현실화되기까지 이행은 더디고 현장에서 느끼는 갖가지 체감 규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법 개정, 정책 신설도 중요하지만 사업 시행의 발목을 잡는 ‘숨은 규제’가 곳곳에 있어 이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 제도와 정책이 아무리 훌륭해도 막상 이를 집행하는 행정기관이나 공무원의 적극적인 개선 의지가 없으면 민간 업계나 국민의 불만과 불편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도시개발 발목 잡는 ‘숨은 규제’ 기부채납

도시개발이나 도시정비 사업의 발목을 잡는 숨은 규제 중 대표적인 하나가 공공기여(기부채납)다.

도시개발사업은 법에 의해 토지 수용 및 사용에 대해 건설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의 공익성 심의를 거쳐 사업 인정을 받아야 한다. 중토위는 공공도시개발 민간 참여 공동 개발 외에 순수 민간사업에 대해서도 공익성을 심사해 시행자가 개발이익에 대한 일정 부분의 환수(공공기여)를 약속하지 못하면 ‘부동의’ 의견으로 사업을 제한한다. 그러나 중토위의 공공기여 이행 요구 기준이 과도해 심사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많아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이로 인한 민간의 피해가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도 평택의 한 도시개발사업은 2021년 이후 다섯 차례나 중토위 심사를 올렸지만 ‘공익사업의 시급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유로 모두 탈락하고 2023년 4월 개발이익에 대한 공공기여를 확약하고 나서야 여섯 번째 심사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대전의 한 도시개발사업도 여러 공공시설을 조성해 기부채납하겠다는 계획을 첨부해 중토위 심사를 올렸지만 공공기여 이행을 구체적으로 담보할 수 없다는 의견으로 탈락해 이후 이행 계획을 보완하고 나서야 조건부로 심사를 통과했다.

위의 두 사례 모두 사업자가 기반 시설 기부채납을 약속했지만 중토위는 이와는 별개로 민간 개발이익에 대한 환수까지 사실상 강요해 과도한 규제라는 것이 시행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전국의 모든 도시개발사업은 중토위 심사 통과가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시행자들은 예상치 못한 심사 탈락으로 사업이 중단돼 이로 인한 재산적, 시간적 피해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토위의 공익성 협의 절차 및 그 운영 방식에 대한 개선이 절실하다는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의 걸림돌 교육환경영향평가

이와 함께 낙후된 도시 슬럼가를 재개발·재건축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이 교육환경영향평가에 가로막혀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교육환경영향평가는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서 도시정비사업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교육환경평가서를 관할 교육감에게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 중요한 절차다.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지만 평가 기준의 불명확성, 관할관청과 교육청의 의견 차이와 현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일조 조건 등 비현실적인 심의 기준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 도시환경정비사업’은 구로구청의 사업시행계획인가 반려 처리로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구로구청은 ‘사업시행자는 사업시행계획서에 교육환경평가 결과 및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 계획 등을 포함해야 하지만 사업추진위원회가 해당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사업시행계획서로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절차적 하자가 발생했다’며 반려 처리를 통보했다. 이에 대해 추진위원회는 “인근 신도림초등학교의 일조를 고려한 설계변경(안)이 완료되면 교육환경평가 조치계획서를 서울시남부교육청에 제출할 계획인데 구로구청은 아직 제출하지도 않은 설계 변경안을 중대한 변경으로 판단해 인가를 반려 처리한 것은 부당한 행정 처리”라고 주장했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삼익비치 아파트 재건축사업도 인근 광남초등학교의 일조권 침해 문제로 2022년 부산교육청이 교육환경평가를 이유로 보류 결정을 내렸고 서울 서초 신동아아파트도 인근 서이초등학교의 일조권 문제로 인해 사업이 지연됐다.

이에 대해 교육환경평가는 꼭 필요하지만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잣대와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행정 시스템만큼은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태현지 기자 nadi11@donga.com
#부동산 인사이드#분양#부동산#민간주도 개발사업#교육환경영향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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