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인재난… “전문가 부족해 유튜브 참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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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 9400명… 700여명 부족
中 배터리업체는 1만5200명 보유

지난해 국내 한 배터리업체는 신규 폼팩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R&D)을 진행했다. 폼팩터는 각형, 원통형 등 배터리 모듈의 최종 형태를 말한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연구진이 참고한 건 결국 유튜브였다.

해당 회사 연구원은 “폼팩터 개발 초기엔 미국의 배터리 관련 학과 연구실에서 올린 개발 과정 유튜브 영상을 보고 따라하기도 했다”며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해외가 선도하던 산업과 달리 배터리 분야는 벤치마킹할 선행 기술조차 없는데 전공 인력도 손에 꼽는 수준이라 막막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는 ‘K배터리’가 인재난에 시름하고 있다. 반면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전문 인력을 대규모로 쏟아내고 있다.

14일 정부 기관이 지난해 말 실시한 첫 ‘국내 배터리업계 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 배터리 3사와 소재 업체 등 전체 업계에서 R&D의 핵심 축인 석박사 인력은 약 9400명이었다. R&D 수요에 비해 700여 명이 부족했다. 반면 2022년 말 중국 배터리업체 7곳의 석박사 R&D 인력은 1만520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중국 내 1위 CATL의 보유 인력은 3100명, 2위 BYD는 8400명에 이른다. K배터리 3사가 회사별로 600∼2300명가량을 보유한 것과 대비된다.

中, 배터리 인재에 주택자금-생활비 지원… 韓, 맞춤형 지원 없어


[인재난에 빠진 K배터리]
〈상〉 韓기업 석박사 연구인력 태부족
中 “석박사 20% 유지” R&D 인해전술… 점유율 턱밑 추격-기술 격차도 위협
美-EU, 억대 연봉-영주권 제공 유혹… “韓 초임 6000만원, 인력유출 못 막아”
최근 중국의 대형 부동산업체 헝다그룹이 청산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국내 한 배터리 기업 인사팀 담당자는 한국인 수소문 작전에 나섰다. 헝다 내 전기차 회사인 헝다자동차에 근무하는 국내 석박사 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한 자릿수의 인재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해당 인사팀 관계자는 “배터리 3사 연구개발(R&D) 석박사 인력은 매년 채용 미달”이라며 “개발 프로젝트는 산더미고 항상 손이 달리는데, 매년 한 줌씩 졸업하는 석박사 인력을 두고 배터리뿐 아니라 완성차와 소재 업체까지 다 같이 경쟁하다 보니 항상 인재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미국, 일본 등에서 선행 기술을 일부 전수받아 시작했던 반도체와 달리 배터리는 태동기부터 한국 업체들이 기술을 스스로 개발해 개척한 분야다. 이 때문에 당장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더라도 미래 기술을 확보할 R&D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은 샌드위치에 끼인 상황이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앞세운 중국의 인해전술에 밀려 기술 격차가 따라잡힐 위기에 봉착했다. 그나마 있는 인력들은 높은 연봉을 앞세운 미국과 유럽의 완성차 업체에 뺏기는 처지다.

● 정부가 주택자금에 생활비 주는 中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놓고 한국과 경쟁하는 중국은 ‘R&D 인해전술’을 위해 중앙 및 지방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중앙정부는 ‘국가 신에너지 정책’에 따라 배터리를 비롯한 주요 신에너지 산업군의 석박사 인재 비율을 모두 20% 이상으로 유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방정부는 이 기조에 따라 주택자금, 생활비 등을 지급하며 인재를 집중 관리한다.

배터리 및 소재 업체들이 밀집한 옌청(盐城) 지역에선 ‘황해명주 인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지방정부가 학사·석사·박사·졸업 후 전문 인력 등 인재 등급에 따라 △주택구입자금 최대 40만 위안(약 7400만 원) △생활비 최대 3000위안 △월세 최대 1500위안을 현금으로 보조하는 것이다. 다른 배터리 핵심기지인 창저우(常州)에서도 지방정부가 ‘용성 영재 프로젝트’라는 제도로 기업이 고급 인재를 영입할 경우 최대 수십억 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반면 한국 정부의 국내 배터리 R&D 인력에 대한 맞춤형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지난달 초 정부가 배터리 특성화 대학원 3곳을 지정해 대학당 30억 원씩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개별 인재에 대한 유인책으로는 미약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나마 기업들이 장학생 제도, 계약학과 프로그램을 통해 등록금 및 생활비 지원, 입사 보장 등을 제공하지만 이조차 대학당 석박사를 연간 10∼15명 배출하는 수준에 그친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연구실에 있는 후배들은 열악한 국내 처우를 고민하다 결국 해외 연구실로 떠난다”며 “정부가 나서서 중장기 양성 계획을 세우고 이들이 국내에 체류할 유인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영주권에 높은 연봉 앞세운 美·유럽연합(EU)
지난해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에서 잇달아 채용 설명회를 열었다. 석박사 R&D 인력들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행사마다 많게는 100여 명의 현지 한국 인재들을 초청해 취업 인센티브 등을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연구소로 들어오겠다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한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미국에서 김 서방 찾듯이 한국에서 석박사를 하다 나가신 분들을 일일이 연락해 모아봤지만 이미 대부분 테슬라,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에 취업해 있었다”며 “국내 기업이 이들의 인건비 수준을 맞춰 주기엔 한계가 뚜렷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EU의 완성차 업체들은 영주권에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인재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업계에 따르면 박사 기준 테슬라 연구직 초임이 연봉 3억∼4억 원가량인 데 반해 국내 기업 연구직 초임은 6000만∼7000만 원에 그친다. 가뜩이나 부족한 석박사 졸업생들의 ‘누수’를 막기 어려운 것이다.

국내 인재 유출이 확대되고 중국의 인해전술 정책이 이어질 경우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판도가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도 CATL과 BYD가 국내 업계를 바싹 추격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비(非)중국 시장에서 1위 LG에너지솔루션(27.8%)과 2위 CATL(27.5%)의 점유율 격차는 0.3%포인트로 좁혀졌다. 2022년 7.1%포인트에서 대폭 줄었다. 6위인 BYD(2.1%)는 아직 존재감은 작지만 사용량 기준 전년 대비 성장률이 395%에 달했다. 반면 K배터리 3사의 통합 점유율은 48.6%로 절반 아래로 내려앉았다.

전문가들은 친환경, 고효율, 전고체 등 선행기술 개발을 통해 한국이 미래 배터리 중심 국가로 도약해야 하는 골든타임에서 인재 확보 전략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철완 교수는 “인재 유출 상황이 지속되면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가 전 세계 배터리 산업의 ‘사관학교’로 전락할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종합적인 R&D 인력 양성 맞춤형 패키지를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k배터리#인재난#전문가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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