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안전진단 없이 했다가 법개정 안되면 어쩌나” 현장 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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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대책’ 주민설명회 현장 가보니
일부 단지 ‘진단 철회’ 등 기대감… “총선용 대책인지 지켜봐야” 우려도
정부, 내달중 법개정안 발의 예정… 총선前 국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

정부가 1·10 공급대책을 통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절차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행 가능성 및 시기 등을 놓고 재건축 단지 주민들이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15일 서울 노원구의 한 재건축 단지에 안전진단 접수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정부가 1·10 공급대책을 통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절차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행 가능성 및 시기 등을 놓고 재건축 단지 주민들이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15일 서울 노원구의 한 재건축 단지에 안전진단 접수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정부 믿고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진행했다가 법이 개정 안 되면 어떡합니까?”(입주민 대표)

“일단은 기존 절차대로 추진하시고 법 개정 상황을 지켜보시는 게….”(구청 담당자)

18일 오후 서울의 한 구청 별관 회의실. 재건축 연한인 준공 30년을 넘긴 이 지역 10여 개 아파트 단지 입주민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해당 구청에서 1·10 공급대책에 따라 주민 대상으로 연 설명회 자리였다. 이 구는 국토교통부가 재건축 규제완화 최대 수혜 지역 중 한 곳이라고 밝힌 지방자치단체이기도 하다.

입주민 대표들은 이날 1시간이 넘도록 구청 담당 직원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일단 재건축을 시작하되 사업 승인 전까지는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설명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A단지 입주민 대표는 “우리 단지는 입주민 대부분이 안전진단이 아예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얘긴데, 그럼 시간도 비용도 절약되는 게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게다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절차를 시작하려면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점에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B단지 입주민 대표는 “총선이 코앞인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며 “추진위 구성, 정비구역 입안도 다 비용이 발생하는데 섣불리 진행했다가 사업이 무산되면 나중에 주민들에게 뭐라고 설명할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질문이 이어지자 구청 담당자는 “지난해 안전진단 기준이 완화돼 대부분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일단은 현행 제도를 따라 사업을 추진하라”고만 안내했다.

정부의 1·10 공급대책 발표 이후 재건축 예정 단지들에선 혼란이 여전하다. 재건축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과 총선 전 관련 법 개정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회의론이 뒤섞여 사업장마다 혼선을 겪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는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다음 달 중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다. 만약 해당 법안이 총선 전 통과되지 않으면 새 국회가 구성된 뒤 다시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안전진단 관련 대책 발효가 여전히 미지수인 셈이다.

일부 현장에서는 그럼에도 기존 절차를 중단하거나 철회하는 단지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울 동작구 명수대현대는 정밀 안전진단을 위해 구청에 진단 비용 융자를 신청했다가 최근 취하했다. 정부 대책이 나오면서 안전진단이 필요 없어질 수도 있으니 일단 지켜보자는 판단을 내린 것. 재건축이 논의돼 온 C단지 주민은 “재건축은 속도가 핵심이라 법 개정을 넋 놓고 기다리다간 오히려 사업을 그르칠 수 있다”며 “주민들 사이에서도 총선용 대책에 불과하다거나, 그래도 좀 지켜봐야 한다는 등 말들이 많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 간 온도차도 감지된다. 정부가 1·10 공급대책 최대 수혜 지역으로 꼽은 노원구는 최근 내부 보고서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실제 시행 시 단지별 동시다발적 추진위 설립과 정비계획 수립 등으로 주민 혼란 및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과도한 공사비 등으로 시행 취지인 주택 공급 활성화로 이어질지 미지수”라며 “사업성에 따른 지역별·단지별 사업 속도 차이와 그에 따른 양극화가 벌어질 것”이라고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 수혜 지역인 1기 신도시에선 단지별·지역별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도 보인다. 정부는 1기 신도시를 대상으로 선도지구를 선정해 임기 내 착공, 2030년 첫 입주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20일 경기 성남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열린 설명회에서 김기홍 분당신도시 재정비 총괄기획가는 “주민 간담회에 가면 모든 단지가 선도지구를 하겠다고 한다”며 “1기 신도시 가운데 분당이 가장 규모가 큰 만큼 최대한 많은 곳이 지정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재건축#안전진단#1·10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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