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아파트 상속하면 상속세 2.4억…“‘집 한 채 중산층’도 상속세 걱정…바람직하지 않다”[세종팀의 정책워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9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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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체제를 한 번 건드릴 때가 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뉴시스.
추경호 부총리. 뉴시스.
추 부총리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제일 높고, 38개국 중 14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며 “상속세가 이중과세 문제 등이 많은데, 국민 정서 한쪽에는 부의 대물림 등에 대한 저항이 많다”고 설명했는데요.

며칠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연말에 상속 체계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며 “상속세를 고민할 여지가 있지만,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고 공감이 있어야 법이 더 진전될 수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 식사 자리에서 만난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한테 상속세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어요. 요즘은 집을 한 채만 가진 중산층 가구도 상속세 걱정을 합니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에 대해 의문이 있어요.(기재부 세제실 관계자)
추 부총리가 상속세 논의를 수면 위로 올린 배경엔 세제실 내에서 한동안 이어져 온 고민이 있었던 셈입니다. 복잡한 논의를 간단히 줄이면, ‘집 한 채 가진 중산층도 상속세를 걱정하는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선 상위 1, 2% 부자만 내는 세금인 상속세는 우리나라에선 중산층에서도 낼 수 있는 세금이 됐다는 거죠.

‘집 한 채 중산층’도 상속세 걱정?
상속세

이건 통계가 뒷받침합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 인원은 1만5760명으로 2002년(1661명)보다 9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전체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피상속인) 중 상속세를 낸 이들의 비율은 4.53%였는데요. 2002년에는 이 비율이 0.69%로 채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국세청은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상속세 납부 대상과 세액이 모두 늘어나는 흐름”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2017년 6억 원 수준이던 서울 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격은 최근 12억 원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15억 원 상당의 아파트 1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집을 상속할 때 세금은 얼마나 내야 할까요? 상속·증여 전문 이장원 세무사의 도움을 받아 계산해봤습니다.

15억 원 아파트 상속 시 세액 2억3000만 원
상속 재산 가액
15억 원
인적 공제(일괄)
5억 원
장례비 공제
500만 원
상속세 과세 표준
9억9500만 원
산출 세액
2억3850만 원
신고세액 공제
715만5000원
최종 납부액
2억3134만5000원


서울 아파트 매매가 평균으로 대략 따졌을 때 2016~2017년에는 상속세가 600만 원대였다면 지난해 기준으론 1억 원 가까이 내야 합니다. 여러 공제 요건을 고려해야겠지만, 배우자가 없고 특별한 공제 사항이 없는 일반적인 경우를 가정한 금액이 그렇습니다.(상속·증여 전문 이장원 세무사)

집 1채만 갖고 있는 분이 돌아가셨을 경우 가족들이 당황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가진 게 집 뿐인데 수천만 원대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된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미리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상속이 실제 이뤄지는 때가 돼서야 크게 실감을 하고 세무사를 찾는 일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상담 사례 중 재건축 중인 아파트를 보유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상속세 부담이 커서 자녀들이 입주권을 팔아 충당한 경우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분이고 자녀들도 근로소득자라 현금이 별로 없었거든요. 1~2년만 기다리면 재건축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는데, 상속세를 못 내 입주권을 급매했고, 그로 인한 손해가 컸던 사례입니다.(서울 지역 A 세무사)


영국은 상속세 폐지 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상속세 최고세율. 자료: 입법조사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상속세 최고세율. 자료: 입법조사처
최고 50%인 한국의 상속세율은 세계 기준으로도 높은 편입니다. OECD 38개 회원국 중 상속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24개국의 상속세율 평균은 25% 수준으로 한국의 절반 수준입니다.

32만5000파운드(약 5억3000만 원)을 초과하는 유산에 40% 세율을 적용해온 영국에선 200년 넘게 유지해온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자는 논의가 최근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영국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다음 주 ‘가을 성명’에서 구체적인 인하 폭 등을 담은 상속세 감세안을 발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국의 가을 성명은 매년 재무장관이 의회에 출석해 발표하는 예산안과 재정전망을 의미합니다. 수낵 총리는 단계적 상속세 폐지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상속세는 2000년 최고세율을 5% 포인트 높인 뒤로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기업상속공제가 수차례 확대됐고, 2015년엔 인적공제액이 소폭 상향되는 정도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었죠.

조응형 기자
조응형 기자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자산이 5억289만 원, 60~65세 이상 자산이 5억4372만 원, 50대 자산이 6억4236만 원 등으로 연령대가 낮아짐에 따라 자산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상속세 고민으로 세무사를 찾는 분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 중 한 세무사는 “체감상 현재 60~70대의 10% 이상은 자녀들이 상속세를 내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요. ‘건드릴 때 됐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이 비율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일지 관심이 모입니다.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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