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교감하며 정서 안정… ‘치유농업’으로 건강한 사회 가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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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의 신박한 농업이야기 3편-치유농업

건강의 회복 위한 수단으로 농업 활용
복지정책과 결합해 뚜렷한 효과 입증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충남 부여에 위치한 치유농장에서 족욕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충남 부여에 위치한 치유농장에서 족욕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의 품에 안기고픈 욕구, 즉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한 감정을 ‘녹색 갈증’이라고 표현했다. 치유농업은 자연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인 사랑에서부터 비롯됐다.

치유농업 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예방형’과 ‘특수목적형’이 있다. 예방형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잠재적인 건강 문제를 미리 막고 건강한 발달과 삶의 질 향상, 건강의 유지 및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특수목적형은 현재 앓고 있는 질병이나 장애 완화 및 신체적·정신적·사회적·직업적·경제적 장애 상태의 능력과 기능을 증진하거나 회복하는 데 목적을 둔다. 치유농업의 범위는 채소와 꽃 등의 식물뿐만이 아니다. 가축을 기르거나 산림과 농촌 문화 자원을 이용하는 경우까지 모두 포함한다. 농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의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농업을 활용한다는 점이 일반 농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치유농업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농업과 같이 존재해 왔다. 치유농업이라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가까이 있는 자연이나 농업을 이용해 건강을 회복해왔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인류의 조상들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여유를 갖게 됐고 관상을 위한 나무와 꽃을 심으며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치유농업은 특히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케어 파밍, 소셜 팜, 그린 케어, 크나이프 등 다양하다. 농업의 다원적 정책에 기반해서는 크게 복지 정책, 의료 정책과 연계하고 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요양원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농업을 활용했다. 부속 농장이나 정원을 두고 농산물을 생산하고 남은 것은 팔기도 했다. 환자의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의 재활에도 도움을 줬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네덜란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치유농장이 일상화됐다. 농장의 규모가 작고 가족 농장이 많은 네덜란드는 국가의 지원으로 치유농장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농장주는 이용자와 다양한 보험 계약 체결로 치유농장 서비스를 제공하고 치유 서비스의 품질 관리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노인, 장애인, 학교를 그만둔 아동·청소년 등에 대한 돌봄 비용을 건강보험 또는 개인 복지 예산제와 연계해 국가나 지자체가 농장에 지급한다.

또한 자연을 활용해 질병 예방 및 치료 등 의료와 연계하는 사례로는 독일의 크나이프가 있다. 유럽 선진국 치유농업의 공통점은 품질인증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인증제가 시행되면 복지 제도와 연계를 통해 치유농업이 더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치유농업 관련 육성법 제정되면서 탄력
과거 전통적인 농업 사회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집 주변에 식량이 될 식물을 심는 것 외에도 관상을 위한 꽃과 나무를 심어 가꿨다. 자투리땅을 놀리지 않고 담벼락 아래에는 채송화를 심고 울타리에는 나팔꽃을 심는 것이 우리 문화였다. 생산 중심 농업의 고단한 노동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며 정서적 안정을 추구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정신 건강 문제를 예방 및 치유하는 데 기여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치유농업이라는 용어는 2013년 농촌진흥청 주관으로 선진 농업국의 녹색 치유농업 사례 및 효과 분석 등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농업의 치유적 관점을 중요하게 여겨 왔다.

농촌 환경과 문화 자원을 휴양과 치유의 차원인 농촌 관광으로 연계하려는 노력도 진행돼 왔다. 용어와 개념은 조금씩 변화해왔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농업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이 증진되고 사회적 관계도 좋아진다는 점에 공감했다는 것이다.

2020년에는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법’을 제정하면서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근거 법과 제도를 갖춰 나가고 있다. 치유농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럽 선진국과 같이 국가 및 지역 단위 지원 체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다.

치유농업과 복지 정책의 만남
강원도 춘천의 농장에서 성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나만의 채소밭 가꾸기 활동을 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의 농장에서 성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나만의 채소밭 가꾸기 활동을 하고 있다.
치유농업은 ‘치유를 제공하기 위한 농업의 활용’을 의미한다. 현대 정신의학 및 작업 치료의 권위자였던 벤저민 러시는 원예 활동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농촌진흥청은 1994년부터 원예작물의 치유 효과 연구를 시작해 치유농업 자원을 발굴하고 과학적 효과를 검증해 왔다.

원예, 곤충, 자연경관, 동물 매개 등 농업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치유농업 자원을 활용해 치유농업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특히 수형자, 만성질환자, 치매, 소외계층, 민원 담당 공무원, 일반 아동, 일반 성인 등 30종에 이르는 대상자별 맞춤형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 및 보급했다.

치유농업과 복지 정책의 연계도 활발하다. 사회복지사업은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점점 고령화돼가고 정신 건강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는 지금 사회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치유농업과 사회복지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 만성질환과 정신 건강을 관리하고자 하는 국민적 관심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농업, 농촌을 활용한 해법은 시의적절하고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치유농업과 복지 정책의 연계는 2020년 보건복지부와 농촌진흥청 간 ‘치매관리사업&치유농업 MOU’로 첫 단추를 끼웠다. 그 결실로 현재는 전국 100여 개 이상의 치매안심센터가 치유 농장과 협력하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어르신 인지 건강 개선과 스트레스 감소 효과를 보고 있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
성장기에 있는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치유농업 프로그램도 주목받고 있다. 아동·청소년기에 발생한 정신질환은 70% 이상이 장기 질환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아동·청소년기의 정신 건강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아동·청소년 대상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했다. ‘자원과 함께 농업으로 소통하는 텃밭 정원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해소, 자존감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동·청소년들은 농업 활동을 하면서 자연과 소통하며 꿈과 진로, 창의성, 책임감 등을 터득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높은 신체 활동량을 요구하는 청소년에게 텃밭 정원을 만들고 교감하는 활동은 에너지 발산의 기회이자 자신과 주변을 돌볼 수 있는 사회적·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농촌진흥청은 교육부의 ‘위 프로젝트’ 사업과 협력해 올해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다양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직업(치유농업사)도 탄생했다. 치유농업사는 농업·보건·심리·상담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기술, 소양을 포괄하는 전문 인력으로 치유 프로그램 개발 및 실행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 전문 자격이다.

농촌진흥청은 치유농업사 활동 확대를 위해 치유농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앙·지방 농촌진흥기관에 배치해 지역의 치유농업 시설을 지원하도록 하고 향후 사회복지기관이나 요양기관 등 의료기관에도 취업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대인에게 치유농업이 필요한 이유
치유농업은 아동·청소년에게는 폭력성, 공격성 등 부정적 정서는 줄이고 공감 능력 등 긍정적 정서 반응을 높인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식물을 기르면 가족 관계 향상에 도움이 된다. 직장인의 사무 공간을 식물로 꾸미면 긴장감, 우울감, 피로감 등이 줄어들고 업무 효율이 향상된다. 홀몸 어르신의 우울감을 줄이고 인지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증명됐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치유농업 활동은 정신질환을 예방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돌봄 문제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치유농장주와의 관계 형성을 통해 농장주에게는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농촌 소멸을 막고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치유농업의 비전이다.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치유농업은 녹색 갈증을 채워주는 가장 좋은 해법이다.

치유농업
농업·농촌 자원이나 이를 이용해 국민의 신체, 정서, 심리, 인지, 사회 등의 건강을 도모하는 활동과 산업을 말한다. 치유농업의 목적은 국민 건강 증진과 농업·농촌의 지속적인 성장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


태현지 기자 nadi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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