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까지 무역적자 266억달러… “반도체 착시효과 사라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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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액 작년 동기 대비 12.3% 줄어
“반도체 호황에 가려져 안 보였던
수출산업 부실체력 여실히 드러나”

반도체와 중간재 수출이 부진하면서 4월 중순까지 누적 무역수지 적자가 266억 달러(약 36조 원)까지 불어났다. 반도체 호황에 가려 한국의 수출 경쟁력 하락이 눈에 띄지 않는 이른바 ‘반도체 착시효과’가 걷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25일 무역현안 간담회를 열고 올 초부터 20일까지 누적 수출액은 1839억 달러(약 246조 원), 수입액은 2105억 달러(약 281조 원)라고 밝혔다.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12.3%, 4.0%씩 감소한 수치다. 수출이 수입보다 하락폭이 더 큰 탓에 올해 누적 적자는 266억 달러까지 커졌다.

4월 중순에 벌써 지난해 연간 무역수지 적자(478억 달러) 폭의 절반을 훌쩍 넘기며 침체에 빠진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수출 부진은 그동안 버팀목이 됐던 반도체 산업이 불황에 빠진 탓이 크다. 반도체 산업은 올해 1분기(1∼3월) 206억 달러(약 28조 원)어치를 수출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8.9%에서 올 1분기 13.6%까지 밀렸다.

다른 측면으로는 한국 산업 구조가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역수지 흑자를 홀로 이끌던 반도체가 부진하자 한국 수출 전체가 적자행진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한국 산업의 수출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다.

특히 글로벌 경기 침체를 맞아 국내외 기업들이 일제히 긴축 경영에 들어가자 중간재 판매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경제 침체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짙어서 중간재는 소비재보다 선제적으로 경기를 반영한다. 중간재 위주 수출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이 더 큰 타격을 입은 배경이다.

반도체外 산업, 수출-설비투자 급감… “수출기반 약화 간과해와”


반도체 착시효과 사라진 수출
2016∼2022년 반도체外 수출 2.6%↑… 전체 산업 평균치 3.8%보다 밑돌아
설비투자는 2017년 68조→작년 49조… 무역協 “세금 줄여 기업부담 덜어야”


반도체가 속한 중간재 분야는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올 1분기 69.5%로 떨어졌다. 중간재의 수출 비중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70%를 넘겨 왔다. 올해 1분기는 중국(―29.6%), 베트남(―27.5%), 홍콩(―44.7%) 대상 중간재 수출의 타격이 유독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글로벌 주요국들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수출을 늘리며 경제 회복을 이끌고 있다. 수출액 기준 1∼4위 국가인 중국(0.1%), 미국(8.9%), 독일(3.8%), 네덜란드(13.0%)는 증가폭은 다르지만 전년 동기보다 올 1분기 수출이 모두 늘었다. 7위 이탈리아도 1분기 수출이 전년보다 9.8% 증가했다. 5, 6위인 일본(―8.1%)과 한국(―12.6%)만 뒷걸음질 쳤다.

무역협회는 그동안 잘 감춰 왔던 한국 수출산업의 열악한 체력이 반도체 부진 이후 여실히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6∼2022년 ‘반도체 외 산업’의 수출 증가율은 ‘전체 산업 평균치’(3.8%)를 밑도는 2.6% 성장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반도체는 연평균 10.8%씩 성장하면서 다른 산업의 부진을 만회해 왔다.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들의 국내 설비 투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2017년 약 68조3000억 원이었던 반도체 외 산업의 설비 투자는 지난해 49조3000억 원까지 19조 원(27.8%) 감소했다. 인건비가 싸고 세제혜택을 비롯한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는 해외로 눈길을 돌린 탓이다. 결국 기업들이 해외 공장에서 직접 생산해 물건을 팔자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물량이 크게 늘지 못하게 됐다. 더구나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이 경쟁적으로 역내 생산기지 유치에 사활을 걸면서 제조업의 해외 이탈을 향후 더 가속화할 수도 있다.

정만기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과격하게 말하자면 반도체 이외 산업은 투자를 안 하고 포기했던 거나 마찬가지”라며 “반도체 착시효과 때문에 다른 수출 기반이 약화되는 양상을 간과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한국 수출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 떨어질 때마다 14만 명의 일자리가 날아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위해 고금리와 세금 부담 완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달 중순 무역협회가 국내 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4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84%가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또한 ‘생산 유연성’을 높여야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KOTRA는 수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9개국을 꼽았다. 우선 자국 내 전기차, 반도체 등 제조업 강화를 추진하는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를 언급하며 이들 국가에서 전기차 및 관련 부품의 소재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자원 가격 상승으로 돈이 몰리는 아랍에미리트(UAE), 호주, 캐나다도 언급됐다. 이 나라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 달러가 넘는다. 구매력이 충분한 만큼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팜, 로봇, 무인 농기계 등이 유망 분야로 꼽혔다.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이스라엘도 경제 규모는 작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KOTRA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경제 둔화세가 가중되면서 한국 수출이 어려운 상황이나 수출활력과 성장동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시장은 분명 존재한다”고 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무역적자#반도체 착시효과#수출산업 부실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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