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년간 SK 비선실세 의혹’ 은진혁 前 사장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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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논란때마다 의혹 재거론… 차라리 당국 조사 받겠다”
최태원의 1조원대 비자금 관리? “장기간 조사… 아무것도 안나와”
SK의 키파운드리 인수때 개입? “투자자와 운용사… 협약 공유 당연”
알케미스트 실소유주인 점 은폐? “악성 루머 또 시달리기 싫었을뿐”

은진혁 전 인텔코리아 사장이 9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SK그룹과 관련해 본인에게 쏟아졌던 각종 의혹들을 적극 해명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은진혁 전 인텔코리아 사장이 9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SK그룹과 관련해 본인에게 쏟아졌던 각종 의혹들을 적극 해명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수년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비선실세’ 의혹을 받으면서 모습을 감춰온 은진혁 전 인텔코리아 사장(55)이 동아일보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은 전 사장은 인터뷰 요청 이유에 대해 “그간 루머에 대응하지 않았지만 최근 진행 중이던 투자가 철회되는 등 개인적인 피해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본보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은 전 사장과 SK 관련 여러 의혹에 대해 그의 발언을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사자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모든 의혹이 해소되기는 어렵고, 추후 당국이 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본보는 앞으로 은 전 사장과 그 주변 의혹들을 계속 취재하면서 보도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




은진혁 전 인텔코리아 사장 인터뷰는 9일 진행됐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일부 의혹을 해명할 때는 목소리가 격앙됐다. 그는 “SK와 펀드 운용 등에 대한 억측이 너무 많다”면서 “차라리 금융감독원 등 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은 전 사장과의 일문일답.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관계는….

“최 회장은 2000년대 초 (기업 오너와 벤처기업인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처음 만났다. (투자 등 사업에 관해) 저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편견 없이 말씀드렸다. 기업 내부에선 뭘 추진하려면 먼저 나오는 반응이 ‘안 돼요’다. 그래서 나처럼 외부에서 연을 맺은 전문가들에게 묻는다. 회사 밖 사람이다 보니 훨씬 자유로운 시각으로 말씀드릴 수 있다. 제 의견을 최 회장이 그대로 받아들였다기보다 크로스체크를 하면서 고려했을 거다.”

―SK와는 어떻게 연을 맺게 됐나.

“2005년 호주 투자은행 맥쿼리에 들어갔을 때 집행했던 투자 대상이 SK엔론(현 SK E&S)이었다. 굉장히 좋은 회사였는데도 자금상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 미국 엔론 파산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SK와의 첫 사업적 인연이었다. 회장이 관여하실 수준은 아니었다. SK엔론 지분 49%를 인수해 사외이사로 등록되기도 했다. 2009년 맥쿼리 퇴사 후 개인 운용업무를 시작했는데 2014년 전후로 SK와 신사업 투자를 위한 글로벌 합작펀드를 많이 만들었다.”

―최 회장의 비자금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다.

“2015년 제가 최 회장의 비선이며 1조 원대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음해가 나와서(강한 어조로 ‘음해’라는 표현을 썼다) 아주 센 조사를 받았다. 장기간 개인과 회사 할 것 없이 국내외 계좌 자금출처와 경로를 모두 오픈했다. 나온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난 투자업계 평판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당시 논의 중이던 운용 계약 건들도 모두 철회됐다. 최 회장을 원망하거나 하진 않지만, 그분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겪은 피해는 크다.”

―SK의 화천대유 연루설 때도 이름이 등장했다.

“해당 논란을 보도했던 열린공감TV(현재 SK그룹이 명예훼손으로 고발)에서 전화가 걸려 와 ‘대표님이 화천대유의 실소유주이고 이를 최 회장의 사면 카드로 활용한 것으로 안다’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더라. 난 화천대유가 뭔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그대로 보도가 나왔다. 화천대유와 관련해 아직까지 검찰이나 관련 당국 조사를 받은 적 없다. 화천대유, 곽상도 등등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 보도 이후 뭐가 나온 것도, 조사로 밝혀진 것도 없지 않나.”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와도 잘 아는 사이인가.

“2015년 말 김희영 대표가 세간에 공개된 후 ‘은진혁이 김 대표를 최 회장에게 소개했다, 그 가족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루머가 온라인에 퍼졌다. 저는 김 대표를 잘 알지도 못한다. 다만 최 회장 부탁으로 2014년 내가 운용하던 펀드에 김 대표의 동생을 1년 반쯤 고용한 적이 있다. 삼성 계열사에서도 일한 적이 있던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인데 펀드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당시 SK와 함께 설립했던 ‘솔라리스 홀딩스’가 1조 원 규모 글로벌 합작펀드(튀르키예 도구스그룹, 호주 그랜트새뮤얼 등과 합작)를 운용했는데 주로 대외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루머가 만들어진 것 같다.”

―SK하이닉스의 키파운드리 인수 과정에서 본인 소유 펀드인 알케미스트가 왜 끼게 된 건가. 알케미스트는 또 ‘은진혁’의 존재를 감추려 했다는데….


“알케미스트의 실소유주는 내가 맞다. 법인을 설립할 때 외국주주 등록을 제가 했고 금융 당국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다. 홈페이지 등에 노출하지 않는 것은 그동안 겪어 왔던 악성 루머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2020년 키파운드리의 인수는 공개된 지정투자자가 각자 GP(General Partner·운용사)를 통해 참여하는 ‘OEM 펀드’였다. 지정투자자는 SK하이닉스와 새마을금고, 그들의 GP가 알케미스트와 크레디언파트너스(현 그래비티PE)였던 거다. GP는 투자 대상과 향후 경영 방안 등을 협의한 뒤 각자 투자자들에게 공유한다. 그러니 협약 문건이 SK하이닉스에서 발견됐다거나 SK하이닉스 관계자가 이를 편집했다거나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래비티PE 측은 이와 관련 그래비티PE가 키파운드리 인수를 위해 알케미스트와 공동 운용한 펀드는 ‘OEM 펀드’가 아닌 ‘프로젝트 펀드’이며, 그래비티PE 주도 하에 새마을금고중앙회에 출자 제안을 해 통상적인 펀드 출자 검토 및 승인 과정을 거쳐 펀드를 결성했다고 13일 밝혔다.

SK하이닉스는 키파운드리(옛 매그나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부)를 2021년 알케미스트 등 사모펀드(PEF) 운용사들로부터 5700억 원대에 인수했다. 알케미스트 등은 2020년 3월 매그나칩의 파운드리 사업과 청주 공장을 4200억 원대에 인수한 뒤 1년 7개월 만에 SK하이닉스에 팔았다. 인수가와 매각가의 차이는 약 1500억 원이다. 은 전 사장은 이중 1200억 원을 투자자인 SK하이닉스와 새마을금고에 배당했고 나머지 300억 원을 공동운용사인 그래비티와 나눠쓰며 세금 등 비용을 제하고 알케미스트는 80억 원의 최종 수익을 가져갔다고 알려왔다.

―SK하이닉스가 왜 처음부터 직접 인수하지 않았나.

“SK하이닉스가 초기부터 직접 인수에 나서기에는 키파운드리와 하이닉스의 임금 격차가 너무 높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모펀드를 통해 먼저 인수하고 우선매수권을 설정한 것이다. 2021년 키파운드리 매각 비딩에서 중국 폭스콘 등 경쟁사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SK하이닉스의 우선매수권 조건이 가장 좋았기 때문에 SK에 낙찰됐다.”

은 전 사장은 키파운드리 관련 운용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알케미스트 한국법인이 순이익 약 158억 원을 올리고 본인 소유의 알케미스트 본사로 약 30억 원을 배당한 내역이 담긴 법인세 납부 관련 자료를 본보에 제공했다.

―왜 SK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와 인수, 매각 등 경영 활동을 위탁하나. 어디까지가 정상적인 것인가.

“대기업들도 자금의 한계가 있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투자를 진행하는 시점에서 기업이 가지는 인수 대상에 대한 정보는 한계가 있다. 펀드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로 진입한 뒤 전략적 투자자, 인수자로 확대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짐으로써 리스크를 헤징 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회사를 인수했다 문제를 발견하면 돈 낭비 아니냐. 투자 대상의 사업성에 대한 실사와 판단 등을 펀드를 통해 하고, 펀드는 이를 대행함으로써 운용 수익을 받는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은진혁 전 인텔코리아 사장#sk#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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