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해발 4000m…화성같은 불모의 땅서 ‘하얀 금’을 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0일 14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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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Li).

원소기호 3번,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 전기차 시대와 함께 몸값이 무거워진 금속.

세계 각 국은 물론, 글로벌 대기업들까지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리튬 생산에 한국 기업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것도, ‘제철보국’이라는 사명 아래 수십 년 동안 철을 만드는 데 주력했던 회사가?

포스코그룹이 수년 간 리튬 생산과 관련된 자료를 배포하고, IR 활동을 통해 설명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직 완전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가끔 공사 현장과 실제 생산된 리튬 사진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걸 믿고 넘어가기에는 다소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12일(현지 시간) 비행기에서 촬영한 포스코홀딩스의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의 리튬 생산 설비 전경. 파란색의 커다란 설비가 염수를 증발시키기 위한 ‘폰드’다. 살타=이건혁기자 gun@donga.com

마침 포스코그룹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 현장을 공개하기로 합니다. 직접 와서 보면 포스코그룹의 리튬 사업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다는 자신감일 테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400km 떨어진 살타 시. 다시 비행기로 약 180km를 날아(자동차로는 안데스 산맥을 비포장도로를 달려 약 8시간 걸립니다)가면 해발 4000m대 고원 지대에 펼쳐진 ‘옴브레 무에르토(Hombre Muerto)’ 염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염호(鹽湖)라고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이 거의 없는 메마른 땅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신 우기 때 비가 5mm만 내려도 물이 고이는 구조입니다. 세계인들이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볼리비아의 유우니 사막과 비슷하죠(기자도 가본 적은 없습니다).

포스코홀딩스의 리튬 생산 시설들은 마치 화성처럼 황량한 외계 행성 한복판에 세워진 ‘우주 기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오직 포스코의 생산 설비들만 세워져 있었습니다.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건설 중인 1단계 생산 공장. 2024년 상반기 준공 예정이며, 연간 2만5000t의 리튬 생산이 목표다. 살타=이건혁기자 gun@donga.com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건설 중인 1단계 생산 공장. 2024년 상반기 준공 예정이며, 연간 2만5000t의 리튬 생산이 목표다. 살타=이건혁기자 gun@donga.com


포스코홀딩스의 리튬 생산을 이해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개념을 먼저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염수입니다. 소금기를 가진 물이라는 뜻인데, 특히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의 물은 이온 상태의 리튬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리터(L)당 0.9그램(g) 수준인데요. ‘에게, 겨우 이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글로벌 상위권 수준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리튬 함유량이 가장 높은 염수는 칠레 아타카마 염호(L당 1.570g)입니다.

두 번째는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입니다. 배터리 양극재에 사용되는 리튬은 주로 화합물 형태로 사용됩니다. 제조 방식에 따라 크게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 두 가지로 생산되는데, 탄산리튬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산화리튬은 전기차용 삼원계 배터리에 주로 쓰입니다. 염수에서 나오는 리튬은 우선 탄산리튬으로 생산되며, 이를 가공해 수산화리튬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폰드’입니다. 염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리튬이 생산되니 ‘리튬전’이라고 해도 될까요) 여기에 염수를 가둬 3~4개월 정도 물을 날려 보내면, 염수 농도가 L당 4g 수준으로 높아집니다. 이 정도는 돼야 가공이 쉽다고 합니다. 전기 소모량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포스코홀딩스의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 설비는 ‘염수를 뽑아 증발 등 가공을 거쳐 수산화리튬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포스코홀딩스의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의 리튬 생산 설비 전경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포스코홀딩스 제공.


비행기를 타고 포스코의 아르헨티나 염수 리튬 생산 지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드넓게 펼쳐진 ‘폰드’들입니다. 현재 이 지역에는 5헥타르(ha) 넓이의 폰드 12개가 있습니다. 현재 이 폰드들에서 만들어진 농축 염수는 포스코가 2019년 시험 생산을 위해 설치한 데모플랜트에서 리튬으로 가공되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이 데모플랜트를 통해 염수 리튬의 생산성과 품질을 약 1년 간 검증했죠.

리튬 생산량에 대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포스코는 2022년 1단계 공장 착공을 결정하게 됩니다. 현장에는 이 1단계 공장의 골조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공장 자체는 아주 큰 규모는 아닙니다. 왜냐면 이 공장에서는 염수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인산리튬으로 생산하는 작업까지만 진행하기 때문이죠. 이후 살타 시 인근 구에메스(Guemes) 공장으로 가져오고, 여기서 수산화리튬으로 가공됩니다.

포스코홀딩스의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설치된 폰드 전경. 이 폰드는 데모플랜트에 투입될 염수를 증발시키기 위해 설치된 '소형' 폰드들이다. 살타=이건혁기자 gun@donga.com
포스코홀딩스의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설치된 폰드 전경. 이 폰드는 데모플랜트에 투입될 염수를 증발시키기 위해 설치된 '소형' 폰드들이다. 살타=이건혁기자 gun@donga.com


1단계 공장 남쪽으로는 554ha 규모의 폰드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통상 290ha로 계산하는 여의도 면적의 2배에 가까운 규모입니다. 현재는 기반을 닦는 토목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죠. 이곳은 2024년 말 완공될 예정입니다.

여기에 더해 포스코는 10월 10억9000만 달러(약 1조5000억 원)을 투자해 2025년까지 2단계 리튬 생산 설비를 완공하기로 합니다. 이어 3, 4단계 투자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포스코는 2030년 아르헨티나 및 기타 지역에서 염수 리튬 연 12만 톤(t) 생산 체계를 갖춘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1단계 공장은 아르헨티나 현지에서수산화리튬을 생산하게 되며, 2단계는 국내 광양 공장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생산한 탄산리튬을 옮겨 와 수산화리튬으로 가공하게 됩니다. 여기에 포스코는 광석에서 생산하는 리튬 연 15만t, 폐배터리를 재활용한 리튬 연 3만t 등 2030년 리튬 생산량 30만t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를 달성했을 때 글로벌 3대 리튬 생산 업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죠.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데모플랜트에서 생산한 리튬의 중간 소재 ‘인산리튬’. 이를 추가 가공하면 ‘탄산리튬’이나 ‘수산화리튬’이 된다. 끈적끈적한 밀가루의 느낌이 난다. 살타=이건혁기자 gun@donga.com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는 해발 4000m 이상 고지대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산소가 희박해 고산병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요. 실제로 일부 동행자들은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긴급히 산소 호흡기를 사용하거나,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도 고지대에서 달리기는 물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숨이 턱 하고 차오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포스코는 고산병 등을 우려해 염호 방문객들에게 전날 음주하지 말 것을 권고해왔다고 합니다. 하물며 일부 근로자들은 공사 현장을 관리하기 위해 장기간 고산지대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죠. 이 때문에 고농도 산소를 제공하는 산소챔버를 설치해두는 등 근로자들의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포스코의 투자는 만성적 외화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정부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대규모 투자는 물론, 현지 업체를 활용한 공사와 현지 인력 채용 등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가 많기 때문이죠. 포스코 아르헨티나는 1단계 공장 가동을 위해 현지 인력 약 300명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투자 규모가 늘어날수록 채용 인원은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겠죠.

여기에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상황과 맞물리다 보니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한국 식당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상당했고, 포스코 아르헨티나 법인이 있는 살타 시 주민들은 동양인을 보면 첫 번째로 ‘꼬레아노?(한국인이죠?)’라고 말을 걸 정도였습니다.

포스코아르헨티나 DP생산기술실장 오재훈 상무보가 ‘폰드’ 앞에서 포스코홀딩스의 리튬 생산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살타=이건혁기자 gun@donga.com
포스코의 아르헨티나 염수 리튬 생산 설비를 둘러보고 나니, 리튬 생산에 대한 포스코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고산병, 강풍 등 악조건과 싸우는 한국인 직원들을 보니 뭉클한 마음도 생기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리튬 생산 체제를 갖추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바로 리튬 가격입니다. 리튬을 대량 생산했는데, 가격이 급락하게 되면 사업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자원광물공사에 따르면 19일 기준 탄산리튬 가격은 t당 51만9500위안(약 9870만 원)입니다. 리튬 가격은 11월 정점을 찍은 후 최근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2020년 말 t당 4만8000위안(약 912만 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최근 탄산리튬의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며 2023년 1만6000달러까지 폭락할 것이란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리튬 생산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고, 포스코 등 신규 기업들이 리튬 생산에 뛰어들면서 공급량이 단기간 내에 늘어날 것이란 지적이죠. 반면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수요가 강한 만큼 리튬 수요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초과 수요가 계속돼 2030년에는 t당 5만 달러대에 안착할 것으로 전망했죠.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건설 중인 1단계 생산 공장. 2024년 상반기 준공 예정이며, 연간 2만5000t의 리튬 생산이 목표다. 살타=이건혁기자 gun@donga.com

여러 변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포스코그룹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현 시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투자로서 평가 받을 만 합니다. 여기에 2010년 확보한 독자적 리튬 추출 기술, 경쟁 기업들보다 한 박자 빠른 투자, 단순 리튬 생산을 넘어 배터리 공급망 전반을 아우르는 사업 모델 등을 바탕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여 가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포스코그룹이 철강 생산 기업을 넘어 배터리 원료와 소재 생산 업체로의 변신에 성공할지 주목해볼만 합니다.

이건혁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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