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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러 공장, 가동 않고 놔두면 압류될 판” 속타는 재계

입력 2022-06-21 03:00업데이트 2022-06-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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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러시아 리스크’ 가중
“이대로 가면 러시아에 언제든 공장을 뺏길 수 있는 상황에 놓이는 건데…. 러시아와 미국 양쪽에 끼여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국내 주요 기업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러시아의 해외법인 압류 법안 추진을 두고 이렇게 토로했다. 러시아의 공장 재가동 압박이 다시 거세지고 있는데 서방 국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서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내 기업들의 ‘러시아 리스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최근 일부 국내 기업들에 현지 생산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과 일부 동남아 국가 선사의 러시아 입항이 일부 가능해지면서부터다. 앞서 3월 MSC와 머스크 등 글로벌 주요 선사들은 러시아 입항을 중단했다. 러시아 정부도 이에 맞서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48개국 선사의 자국 입항을 제한해 왔다.

현재 국내 기업들의 러시아 현지 사업은 거의 중단됐다. 현대자동차는 3월 부품 수급난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했으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내수용 물품 수요를 맞추는 정도의 최소 가동률만 유지하고 있다. 핵심 부품이나 자재를 러시아로 실어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최근 일부 입항 제한을 풀면서 공장 재가동을 위한 부품 및 자재 선적을 요구해 오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서방의 제재 분위기를 고려할 때 러시아행 배에 당장 선적하겠다는 결정은 불가능하다”면서 “러시아 항로가 막혀 있으면 핑계라도 대는데 이제 변명할 것도 없어졌다”고 했다.


문제는 러시아 측의 법적 움직임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하원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해외 출자 비율이 25%를 넘는 기업이 러시아 현지 사업을 중단하는 경우 러시아 정부가 자산을 국유화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1차로 통과시켰다. 현지 일자리와 공급망을 보호한다는 명목이다. 로이터는 “하원의 1차 심의가 법안의 필요성을 승인한 것이라면 2차 심의는 구체적인 조율이 이뤄지는 단계”라고 전했다. 2, 3차 심의 및 상원 비준을 거치려면 시간은 좀 더 걸릴 수 있다.

현대차는 2010년 6800억 원을 투자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연간 23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이 공장의 지난해 말 기준 자산 가치는 1조9000억 원이 넘는다.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6년 러시아에 진출한 LG전자는 5200억 원을 들여 모스크바주 루자에 TV와 생활가전 공장을 준공했다. 삼성전자는 2008년 투자금액 3200억 원을 들여 칼루가주 보르시노에 TV 공장을 설립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TV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생활가전 시장에서도 삼성과 LG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최악의 경우 이들의 설비 중 일부가 압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민간기업이 스스로 결정하기 힘든 외교적 문제가 연계돼 있어 더 답답하다”며 “자산 압류 걱정도 있지만 공들여 키워온 러시아 시장 자체를 놓칠 경우 타격이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르노그룹의 경우 러시아의 압류 법안 추진에 따라 지난달 현지 자회사들을 러시아 국영기업에 2루블(약 46원)에 매각해 화제가 됐다. 단 6년 이내에 같은 가격으로 지분 매입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뉴욕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은 떠나는 서방 기업들을 국유화하겠다고 위협했지만 르노의 사례로 볼 때 결국 서방 기업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고 분석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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