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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뚝배기 쉽게 나를 방법? 서빙로봇 만든 ‘공학박사’ 식당주인

입력 2022-04-15 03:00업데이트 2022-04-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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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 Change]〈9〉 ‘베어로보틱스’ 하정우 대표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베어로보틱스 한국 법인 사무실에서 인공지능 자율주행 서빙 로봇 ‘서비(Servi)’(오른쪽) 옆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다. 서비는 현재 한국, 미국, 일본의 식당과 요양병원, 호텔 등에서 쓰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로봇이 서빙하면 종업원은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 구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2016년 실리콘밸리에 한식당을 차린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46)가 가졌던 질문이다. 1m가량 높이, 원통형 모양의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서빙 로봇 ‘서비(Servi)’는 그 질문을 통해 개발됐다. 하 대표가 뼈마디 상해 가며 옮기던 돌솥과 뚝배기를 서비는 식탁 사이를 오가며 한 번에 30kg씩 거뜬히 나른다.
○ 구글 엔지니어가 한식당 하다가 로봇 떠올린 이유
대학교수가 꿈이었던 하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인텔 연구소에 입사했지만 이론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았다. 1년 만에 인텔에서 퇴사해 구글에 입사했다.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클라우드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개선하는 일을 맡았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구글 검색 속도가 빨라졌다. 전 세계 사람들이 쓰는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하지만 그가 맡은 소프트웨어 성능이 최적화하면서 할 일이 사라지자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투자 목적으로 한식당을 인수했다. 그는 ‘식당에 투자를 하고, 운영은 직원들에게 맡기면 구글과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일단 종업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가 퇴근 후 4∼5시간, 주말에는 하루 15시간씩 식당에서 음식도 만들고 서빙도 했다. 온몸이 아팠다.

하지만 신중호 라인 공동대표, 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 김찬우 삼성전자 부사장 등 현지에 있던 한국인들이 식당을 자주 찾았다. 모니터 앞에만 앉아있던 구글에서의 삶과 달리 손님들과 소통하는 식당 일이 즐겁기도 했다. 그는 ‘로봇이 일을 일부 대신해 주면 종업원들이 일을 더 재밌게 하고 식당을 떠나는 일도 줄어들 것’으로 봤다.
○ 식당 구석에서 4개월 만에 탄생한 서빙 로봇
서빙 보조 로봇을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은 하 대표는 2017년 초 구글을 퇴사하고 함께할 동료를 찾아 나섰다. ‘구글 엔지니어’라는 그의 경력은 창업 팀을 꾸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구글 동료를 통해 또 다른 구글 엔지니어를 소개받았고, 로봇 커뮤니티에서 로봇 관련 지식에 대해 질문하다가 영국인 로봇 전문가와 인연이 닿게 됐다. 베어로보틱스의 팡웨이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브렌 피어스 전 최고연구책임자(CRO)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마다 가게 문을 닫고 식당에서 로봇을 개발했다. 새로운 분야였기 때문에 부품 제작부터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다. 로봇에 장착할 바퀴의 타이어를 시중에서 구할 수 없어 고무 틀을 짜 타이어를 직접 만들었다.

개발 시작 4개월 만에 서비의 초기 모델 ‘페니’가 완성됐다. 이후 지속적인 보완 과정을 통해 완성 1년 만에 종업원들이 개발자의 도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현재 ‘서비’라는 이름으로 개명된 이 로봇은 사전에 입력된 식당 구조와 라이다(LiDAR) 센서, 3차원(3D) 카메라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장애물을 피해 주행한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사물뿐 아니라 테이블에 걸친 손님 팔꿈치도 감지해 피할 수 있다. 식당에서 직원이 테이블 번호만 입력하면 서비는 해당 테이블로 음식을 운반한다.

그런데 왜 로봇 이름을 바꿨을까. 하 대표는 “처음에는 미국 시트콤 ‘빅뱅이론’에서 치즈케이크 팩토리 서버인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페니’라 불렀는데, 서빙 로봇에 여성 이미지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름을 ‘서비’로 바꿨다”고 했다.
○ “유용한 로봇 만들어 인류에 기여할 것”
현재 서비는 한국 TGIF, 온더보더, 미국 칠리스, 데니스 등의 식당뿐 아니라 급식업체, 요양병원, 호텔 등에서도 쓰이고 있다. 전 세계에 약 5000대가 판매됐다. 서비가 이동한 거리는 최소 61만 km다.

2020년 소프트뱅크그룹이 리드한 시리즈 A 투자(370억 원)를 받았던 베어로보틱스는 지난달 10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사람들은 막대한 투자 규모에 주목하지만 정작 하 대표는 담담하다. 그는 “투자 유치는 성공의 지표가 아니다”라며 “사업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된 만큼 빨리 직원을 더 채용하고 유용한 로봇을 만들어 인류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하 대표의 꿈: ‘로봇을 쓰니 예전만큼 고생 안 하게 됐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

#BTS가 베어로보틱스에 미치는 영향: “국가 위상이 올라가 인재 채용에 도움이 많이 된다. 미국 미주리주 소도시 출신 직원이 ‘BTS를 안다’며 지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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