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아파트 대상 대규모 기획조사, 정책실패 책임 ‘덤터기’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0일 1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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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정부가 공시가격 1억 원 이하의 저가 아파트 거래자에 대한 대대적인 기획조사를 벌이기로 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국토교통부는 10일(오늘)부터 내년 1월까지 전국의 공시가격 1억 원 이하 아파트(이하 ‘저가 아파트’)를 거래한 법인과 외지인을 대상으로 실거래 기획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조사대상은 2020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 2개월 간 거래된 저가 아파트 24만6000건 가운데 법인 6700여 개가 거래한 2만1000건(8.7%)과 외지인 5만9000여 명이 거래한 8만 건(32.7%)이다.

국토부는 기획조사를 진행하는 이유로 저가 아파트 거래와 관련해 제기된 취득세 중과를 회피하기 위한 편법거래 의혹을 꼽았다. 또 법인 등의 저가 아파트 집중 매집으로 인한 거래가격 상승 등의 피해 우려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저가 아파트 인기가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는데도 민간에 부작용에 따른 책임을 묻는 ‘덤터기 씌우기’라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다주택자 등의 취득세를 최대 4배 올리는 ‘7·10 대책’을 내놓으면서 저가 아파트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당시 시장에서는 정부가 저가 아파트를 좋은 투자 먹잇감으로 만들어줬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 공시가 1억 미만 저가 아파트 거래도 조사
국토부에 따르면 이번 기획조사는 저가 아파트를 매수한 법인과 외지인을 대상으로 자금조달계획, 매도·매수인, 거래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상지역은 전국 모든 지역이다.

조사 결과, 거래과정에서 실거래금액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거나(업·다운 계약) 편법증여나 명의신탁이 의심되는 등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면 경찰청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에 통보되고, 처벌받게 된다.

국토부는 이상거래에 대한 집중조사와는 별도로 최근 급증하고 있는 법인의 저가아파트 매수에 대한 심층적인 실태조사도 진행한다. 매수가 집중되는 지역이나 물건의 특징, 매수자금 조달방법, 거래가격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저가 아파트 거래에서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4월까지만 해도 5% 남짓에 불과했지만 이후 급증하기 시작해 8월에는 무려 22%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행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토부 김형석 토지정책관은 “이번 기획조사를 통해 법인 명의를 이용한 투기나 다운계약 등 위법행위를 적극 적발하고, 엄중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인의 저가 아파트 매수에 대한 면밀한 실태 조사를 통해 제도보완에 필요한 사항을 발굴하고, 제도개선에 활용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 후끈 달아오른 저가 아파트 시장
정부가 대대적인 조사 착수라는 ‘칼’을 빼들 만큼 저가 아파트 시장은 실제로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상태다.

국토부가 민주당 소속 장경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10 대책 발표 이후 올해 8월까지(계약일 기준) 저가 아파트 거래건수는 모두 26만555건이었다. 직전 14개월간인 2019년 5월~2020년 6월까지의 매매건수(16만8130건)와 비교하면 무려 55.0%(9만2425건)나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에는 269채 사들인 개인 다주택자가 있는가 하면, 1978채를 한꺼번에 매입한 법인도 있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가 3만3138채로 가장 많았고, 경남(2만9052채) 경북(2만6393채) 충남(2만4373채) 충북(1만9860채) 등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지방 지역에서 저가 아파트 거래가 크게 늘어난 게 눈에 띈다.

이런 추세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이달 9일까지 등록된 전국 아파트 매매계약 1500건 가운데 실거래가가 1억 원 미만이 아파트가 34.1%를 차지했다. 실거래가가 1억 원 미만인 아파트 매수비중은 올해 9월 15.8%에서 지난달 19.3%로 늘어났고, 이달에 다시 15%포인트(p) 이상 급등한 것이다.

● “정부가 판 깔아주고, 덤터기 씌우나”
이번 정부의 기획조사에 대해 시장에서는 저가 아파트 거래로 버텨왔던 지방 부동산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반응과 함께 정책 실패로 인한 문제의 책임을 민간에 덤터기 씌우는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저가 아파트는 대부분 입지가 떨어지거나 노후해 그동안 여윳돈 투자자는 물론 내 집 마련 실수요자들에게서도 외면을 당해왔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해 7월 ‘7·10 대책’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책 이전까지 개인기준으로 1~3주택까지는 취득세율이 1~3%였고, 4주택 이상은 4%가 적용됐다. 대책 발표 이후엔 1주택자는 1~3%가 유지됐지만 2주택자는 8%, 3주택 이상은 12%로 대폭 올렸다.

하지만 공시가 1억 원 미만은 예외를 허용했다. 이에 따라 시세 2억 원 전후의 저가 아파트를 수백, 수천 채 사들여도 취득세는 1주택자와 똑같은 1%를 적용받게 됐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저가 아파트에 대한 다주택자와 법인의 쇼핑은 정부가 사실상 부추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번 조사에 대해 사실상 ‘정책실패’로 인한 문제를 민간에게 뒤집어씌우는 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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