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떠난뒤 대출 막혀… 급한 김에 사채 덥석, 결국 횟집 팔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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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위기지역 ‘불법 사금융의 늪’]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에 있는 산업단지에서 공장 근로자들이 24일 점심시간에 맞춰 인근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군산=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에 있는 산업단지에서 공장 근로자들이 24일 점심시간에 맞춰 인근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군산=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24일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의 먹자골목. 점심시간이지만 식당 대부분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썰렁했다. 그나마 인근 공장과 점심식사 계약을 맺은 몇 곳에서만 작업복을 입은 공장 직원들이 보였다. 이곳에 건물을 갖고 있는 김모 씨(53)는 “세입자인 자영업자들이 은행에서 대출이 안 돼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 내가 대신 수도요금을 내주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공단이 있는 오식도동 먹자골목은 현대중공업, 한국GM 직원들이 점심, 저녁마다 몰려드는 곳이었다. 식당 370여 개가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약 2년 전 가동을 멈추고 한국GM 군산공장마저 지난해 폐쇄되자 이곳 식당들의 매출이 크게 줄었다. 가게가 문을 닫기 시작하자 2년 전 100만 원이 넘던 월세(옛 30평 기준)가 요즘엔 30만 원대로 떨어졌다. 오식도동 인근 비응항에서 건어물을 파는 김성도 씨(55)는 “공단 인근 식당 사장들이 사채를 쓴단 얘기가 파다하다. 그런 가게는 3개월을 못 버티고 문을 닫는다”고 했다.

24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 신항로에 있는 가게 문에 대부업 전단이 붙어 있다. 이 가게는 폐업한 상태다. 영암=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24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 신항로에 있는 가게 문에 대부업 전단이 붙어 있다. 이 가게는 폐업한 상태다. 영암=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군산이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들면서 자영업자를 포함한 지역 주민들이 생활비 등 급한 불을 끄려 불법 사금융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군산경찰서가 이자 계산을 요청한 대부업·사금융 사건은 2015∼2017년에는 한 건도 없었는데 지난해엔 17건 발생했다. 경찰은 불법 사금융 사건을 처리할 때 외부에 연리가 얼마인지 계산을 요청한다. 군산경찰서 관계자는 “지역경제가 많이 안 좋아 사채 피해가 많아졌다. 검찰도 사채업자의 이자율 확인은 특별히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의뢰하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금융당국이 최근 시중은행은 물론 상호금융권까지 대출규제를 강화하자 제도권 밖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서민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군산 월명신협 관계자는 “이달 말 한국GM 군산공장 실직자들의 실업급여가 종료되면 사금융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고 했다. 이진영 전북신용보증재단 군산지점장은 “지난해 대출보증 실적이 전년에 비해 53%가량 늘었다”며 “작년에 보증을 받았던 사람들이 돈이 떨어지자 또 오고 있는데, 재원이 부족해 지원을 못 하니 안타깝다. 이곳에서마저 거절당한 사람들은 사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가 고용·산업위기지역으로 지정한 군산은 물론이고 전남 목포, 경남 창원과 거제 등에서도 사금융 피해가 늘고 있다. 경찰이 이자 계산 확인을 의뢰한 대부업·사금융 사건은 군산, 목포가 있는 호남·제주권에서 최근 3년 새 4.8배로 늘었다. 목포에서 삼겹살집을 하는 이모 씨(47)는 “일수꾼들이 아침마다 이곳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명함을 돌린다. 사채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급하니 사채업자의 제안을 덥석 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채업자는 생계가 급한 서민에게 ‘돈 잘 빌려주는 이웃’으로 선량하게 접근했다가 연체가 생기면 찰거머리처럼 악독하게 상환을 요구하는 고리대금업자로 변한다. 군산 소룡동에서 횟집을 운영했던 장모 씨(55)는 지난해 자녀 학자금이 급해 다른 가게 사장의 친구를 소개받았다. 그 사람은 600만 원을 내주는 조건으로 연리 200%를 요구했다. 기존 대출금 때문에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지 못했던 장 씨는 ‘설마 금방 갚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돈을 건네받았지만 그게 화근이었다. 기업들이 떠나가면서 영업여건이 갈수록 악화되자 사채이자로만 1년에 1200만 원을 내야 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다. 횟집을 팔아 다른 빚을 우선 갚은 장 씨는 경찰에 사채업자를 신고했다. 사채업자는 장 씨에게 “내가 감옥에 가도 돈을 빌린 건 민사사건이니 끝까지 돈을 갚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4월 창원에서 직장을 구하던 강모 씨(35)는 지역신문에서 ‘법정 이자율로 대출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사채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생활비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명목으로 실제 이자율은 연 30%로 법정최고이율(24%)보다 높았다. 빚 독촉에 쫓기던 강 씨는 그해 11월 경찰에 사채업체를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채업자들은 대포통장에 대포전화를 쓰니 수사하기 복잡하다”며 수사를 회피했다. 강 씨는 “대통령은 불법 사금융 단속을 강화하라고 하는데, 경찰들이 서로 다른 경찰서로 가라고 미루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직 사채업자인 40대 고모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휴대전화 20개를 쓰는 업자도 있다. 경찰이 정기적으로 단속을 하지만 점조직처럼 활동하는 사채업자들을 절대 제대로 잡을 수 없다”고 했다.

서민들이 사금융 구제책을 상담할 곳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지방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는 서민들이 줄을 서서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다. 공현배 거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장은 “요즘 거제에선 사람들이 신용회복 신청을 해도 면담을 받으려면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신청자들이 폭증하고 있다”고 했다.

군산·목포=김형민 kalssam35@donga.com / 장윤정·조은아 기자
#고용위기지역#불법 사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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