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짜본 학생들 “저도 커서 목장할래요”… 創農 꿈을 심어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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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농업으로 100만 일자리를]<2> 창업생태계 바꾸는 농업벤처

목장 체험 프로그램 운영 지난달 27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 ‘은아목장’ 김지은 대표가 체험 목장을 방문한 어린아이와 함께 젖소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여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목장 체험 프로그램 운영 지난달 27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 ‘은아목장’ 김지은 대표가 체험 목장을 방문한 어린아이와 함께 젖소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여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전 목장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목장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입니다. 이젠 사람보다 젖소가 더 좋아요.”(김지은 ‘은아목장’ 대표)

지난달 27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 밑 좁은 도로를 올라가다 보니 ‘은아목장 가는 길’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였다. 안내판을 따라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거짓말 같은 풍광(風光)이 눈앞에 펼쳐졌다.

길의 끝에는 7만3000m² 규모의 광활한 목장이 조성돼 있고 그 한가운데에서 말과 양, 개가 마음껏 뛰어놀고 있다. 목장 위에 위치한 축사에선 70여 마리의 젖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그늘에선 돼지가 잠을 자거나 무언가를 먹고 있다. 마치 유럽의 어느 한적한 시골 목장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다.

은아목장을 이끄는 주인공은 김지은(33) 김지아(31) 자매. 1983년 이곳에 터를 잡고 목장을 운영한 부모님을 이어 2대째 목장을 운영 중이다. ‘은아목장’은 두 자매 이름의 마지막 글자에서 따 왔다.

○ 청년농부들, 창업 스펙트럼 넓혀

젊은 자매는 원유 생산에 집중해오다 치즈와 요구르트 등 유제품까지 생산하고 있으며 목장을 일반인에게 개방해 목장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두 자매의 어머니인 조옥향 씨(65)가 남편과 함께 귀농해 젖소 3마리로 시작한 목장은 현재 연간 방문객 2만 명, 연매출 8억 원을 올리는 안정적인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김지은 대표는 “하루 1t가량 생산하는 우유와 200kg 정도 생산하는 치즈, 요구르트 등 유제품이 주요 수입원”이라며 “2006년부터 시작한 체험목장 프로그램을 통해 얻는 수익도 매출의 40% 정도 된다”고 말했다.

목장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어린 시절 산과 들에서 뛰놀며 자랐다. 1년을 여주 시내 아파트에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면 목장을 떠난 적이 없다. 목장에서 생산하는 원유로 쿠키, 케이크 등을 만들어 팔겠다는 각오로 세계 3대 요리 학교인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와 숙명여대 간 협약으로 만들어진 제과·제빵사 양성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젊은 농부가 목장을 운영하다 보니 김지은 대표는 방문객으로부터 목장 창업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는다. 특히 목장 체험 실습을 오는 여주자영농업고 자영축산과 학생들의 관심이 높다.

“젊은 사람들이 목장을 하는 게 신선해 보이나 봐요. 고1 때 실습을 왔던 한 남학생은 ‘저도 나중에 체험목장 창업할래요’라고 하더라고요. 농촌에서도 창업할 수 있는 영역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은아목장은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하루 수십 명이 방문하는 목장체험 프로그램을 두 자매가 감당할 수 없어 여주지역 젊은 엄마들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채용하고 있다. 목장을 찾는 수요층이 주로 어린아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많게는 하루 10여 명이 오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긴 뒤 아이들 하원 시간까지 일하다가 돌아간다.

김 대표는 “누구든 편하게 목장에 와 풀밭에 누워 쉬다가 우유 짜기 체험을 하고 동물과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갈 계획”이라며 “젊은 농부의 감각을 살려 목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다채롭게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인맥, 자본 없는 청춘도 창업”

교육생들과 함께 채소 수확 1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젊은협업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정민철 대표(오른쪽)가 공동 대표이자 교육생인 20, 30대 청년들과 쌈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홍성=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교육생들과 함께 채소 수확 1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젊은협업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정민철 대표(오른쪽)가 공동 대표이자 교육생인 20, 30대 청년들과 쌈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홍성=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젊은 농부들이 처음부터 창업에 성공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인맥과 자본이 없는 청년들은 낯선 농촌에서 도농 간, 세대 간 갈등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정민철 대표(51)가 충남 홍성군에서 교육생 2명과 함께 공동 운영하기 시작한 젊은협업농장은 이런 실패 확률을 줄여주는 청년농부 사관학교다.

교육생들은 길게는 2, 3년 동안 젊은협업농장에 머무르며 공동 대표로서 농장을 경영하고, 농장에서 나온 수익으로 생활한다. 이 과정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실제로 농장 경영을 하기 위해 독립하거나 농산물 가공, 유통 등 관련 직종에 취직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약 40명의 교육생이 거쳐 갔고, 이 중 절반가량이 계속 농업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정 대표는 “농업에 관심은 있지만 인맥도, 자본도 없는 청년들은 창업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젊은협업농장 같은 공동 경영 농장이 마을마다 있다면 갈등을 미리 경험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수원에서 살며 회사를 다니다가 이 농장에서 1월부터 일하기 시작했다는 이원석 씨(35)는 인근 마을에서 월세를 얻어 살며 매일 젊은협업농장으로 ‘출근’한다. 이 씨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꿈은 있었지만 당장 기술도, 땅도 없이 먹고살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지금까지는 별문제 없이 생활하고 있다. 앞으로 농사를 제대로 배워 꼭 독립하고 싶다”고 했다.

젊은협업농장의 실험은 학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사는 1, 2년 단위의 도제식 교육, 현장 교육 없이는 배우기 힘들다”며 “농촌 창업도 일반 창업과 마찬가지로 초기 2, 3년 동안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데 협업농장은 이런 청년들을 위한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고 말했다.

여주=송충현 balgun@donga.com / 홍성=이새샘 기자
#농업#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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