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값을 가늠할 수 있는 세계 3대 유종 가격이 모두 배럴당 60달러를 넘었다. 지난해부터 나타난 유가 상승세가 올해도 이어질 조짐이다. 중국 등 신흥국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와 중동 지역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공급 불안이 동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유가 상승세가 가팔라지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지난해 말 종가보다 0.3% 오른 배럴당 60.61달러였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67.12달러로 거래가 이뤄졌다. WTI와 브렌트유가 새해 첫 거래에서 배럴당 60달러를 넘은 건 2014년 이후 3년 만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WTI는 12.5% 올랐다. 한때 40달러 선까지 떨어졌으나 지난해 4분기(10∼12월)부터 본격적으로 상승하며 약 2년 6개월 만에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 지표인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지난해 11월 이후 꾸준히 배럴당 6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꾸준히 상승하는 건 세계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때문이다. 중국, 인도에서 원유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에서는 각종 경제 지표가 개선되며 경기 회복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신흥국과 선진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1%포인트씩 상향 조정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으로 원유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유가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이슬람국가(IS) 잔존 세력의 테러로 리비아 송유관이 폭발하며 국제 유가가 출렁였다. 이란 반정부 시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등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상반기 중 국제 유가가 최대 배럴당 8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국제 유가는 국내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 11월 생산자물가지수는 국제 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올랐다. 무엇보다 국내 휘발유 값이 들썩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22주 연속 오르며 L당 1543.1원까지 상승했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오르면 소비자물가뿐만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소비, 투자 모두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수출액이 늘어나는 긍정적 요인도 있지만 내수 전반에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그나마 국제 유가 상승의 충격이 적었던 건 원화 강세 때문이다. 유가가 올랐지만 원-달러 환율이 떨어져 유가 상승분이 상쇄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1년 동안 12.8% 하락(원화 강세)했다.
새해에도 원화가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상황을 예측하긴 쉽지 않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이 법인세를 낮췄고 다른 나라보다 경제성장률 예측치도 높으며 금리 인상도 앞두고 있어 달러 강세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면 국제 유가 상승의 여파가 한국 경제에 본격적으로 들이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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