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드만삭스’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국투자증권이 가장 먼저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받으며 ‘국내 첫 초대형 투자은행(IB)’의 타이틀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IB가 출범하면 기업 대출이 확대되면서 신용이 떨어지는 신생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하지만 시장에 손실 위험이 큰 ‘모험 자본’ 공급이 늘어남에 따라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열린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초대형 IB 지정안과 단기금융업무 인가안이 상정됐다. 초대형 IB 신청사는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곳이다. 이 중 한국투자증권만 자기자본 2배 한도의 발행어음을 조달할 수 있는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았다. 8일 금융위 정례회의를 통과하면 이달 안에 초대형 IB 영업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단기금융업무는 초대형 IB의 핵심 사업이다. 자기자본의 200% 한도 내에서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을 발행해 대규모 자금을 기업에 대출하는 것이다. 그동안 증권사는 고객 예탁금을 마음대로 운용할 수 없어 수익 구조가 제한적이었다. 발행어음은 비용도 적게 들고 운용도 간편해 성장이 정체된 증권사들은 사업 인가에 사력을 다해 왔다.
한국투자증권은 가장 먼저 발행어음 인가를 받으면서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6월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4조3450억 원. 향후 8조 원 이상의 자금을 추가로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업 금융 시장에서 1조 원 규모까지는 한국투자증권이 시장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한국투자증권 외에도 이달 안에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KB증권의 단기금융업 심사를 완료할 방침이다. 삼성증권은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돼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단기금융업 심사가 보류된 상태다.
초대형 IB 출범이 일자리 창출과 혁신기업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높다.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초대형 IB가 신성장 기업에 24조6000억 원가량을 공급할 경우 최대 43만 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가 차량 공유 기업 우버에 투자해 성장의 밑거름 역할을 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다만 초대형 IB들이 덩치만 불리기보단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증권사들이 대출업무 경험이 부족하고,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는 역량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초대형 IB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며 “투자자 보호와 재무건전성 유지를 위해선 리스크 관리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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