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비는 공항, 썰렁한 백화점… 왜 그럴까

  • 동아일보

‘소유’ 대신 ‘경험’ 소비사회로

직장인 김모 씨(37·여)는 3일 베트남 다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올 초 하와이에 이어 두 번째 해외여행이다. 하반기(7∼12월)에는 제주도 여행을 계획 중이다.

김 씨는 “여행을 앞두고는 설레고, 다녀와서는 추억이 남는다. 그 힘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 가족은 여행은 자주 가지만 옷이나 가구는 주로 저렴한 것으로만 산다. 자동차는 13년째 바꾸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황금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인천국제공항은 김 씨처럼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9일부터 이달 9일까지 약 197만 명이 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 해외 출국자 수는 100만 명가량이다.

○ 유형 상품→무형 상품으로 소비 이동

해외여행 급증은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내국인 출국자 수는 2238만 명으로 사상 첫 2000만 명을 돌파했고 가계의 해외 지출은 사상 최대인 29조 원에 육박했다.

그렇다고 가계 전체 소비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통계청 추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오히려 전년 대비 0.5% 줄었다.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여행비는 늘린 셈이다.

지갑을 닫은 분야는 주로 의류, 신발, 식료품 등이다. 가계는 2014∼2016년 3년 연속 의류·신발 지출을 각각 0.1%, 4.4%, 2.4% 줄였다. 지난해 의류·신발 지출 비중은 6.2%로 2011년(6.5%)에 비해 약 0.3%포인트 줄어들었다. 반면 외식과 호텔 이용료 등이 포함된 음식·숙박 지출 비중은 5년 사이 12.5%에서 13.5%로 1.0%포인트 증가했다. 영화관람료 등 문화생활, 취미 관련 상품 지출을 포함한 오락·문화 항목 비중 역시 0.5%포인트 증가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비가 의류, 식료품 등 소유가 목적인 유형 상품에서 외식 문화 여행 등 경험이 목적인 무형 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의류와 식료품 등 유형 상품을 주로 파는 유통 현장 경기는 좀체 풀리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 매출은 1.4% 줄었다. 올해 들어 수출과 소비 등 주요 경제지표가 개선되며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유통 현장의 실적 회복세는 미미하다. 지난달 롯데와 현대백화점의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1.9%, 1.6% 줄어들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5월 연휴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전망은 밝지 않다”고 말했다.

○ ‘경험’을 소셜미디어에 과시

유형 상품 소비가 상대적으로 줄면서 기존 유통업체가 어려움을 겪는 현상은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경기 회복 추세에도 불구하고 1분기(1∼3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백화점, 의류 전문점 등 유통업체가 9곳에 달했다. 이는 작년 한 해 파산한 유통업체 수와 같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라는 게 외신들의 설명이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는 “급속한 온라인쇼핑 확대와 더불어 소비의 흐름이 여행과 경험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HSBC 분석에 따르면 미국 전체 소비에서 여행 및 외식 비중은 최근 15년 동안 약 5%포인트 증가했지만 자동차(약 3%포인트)와 가정용품(약 1%포인트)은 줄었다.

소비자의 경험 선호 현상에 대해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자는 단순히 ‘좋다’보다 ‘짜릿함’ ‘해방감’의 감정을 원한다. 물건을 살 때보다 경험을 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빨라진 유행 변화와 기술 평준화로 상품의 편익 유효기간이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소비자가 물건을 살 때 느끼는 ‘스릴’은 즐거운 경험보다 빨리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도 외식, 여행 시장의 성장에 기여했다. 경쟁적으로 독특한 ‘경험’을 올리고 싶어 한다는 얘기다. 여행컨설팅업체 휴트래블의 마연희 대표는 “비행기는 저가, 호텔은 특급을 택하는 추세가 강하다. 좋은 숙소는 자기만족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유통업체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험적 요소를 결합한 복합쇼핑몰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놀이시설만 이용하고 소비는 예상보다 적게 하고 있어 고민이 적지 않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앞으로의 복합쇼핑몰 형태에 대해 “가격이 높은 편인 백화점보다는 충동구매가 가능한 저렴한 브랜드 매장, 아웃렛의 결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여행#소비#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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