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최근 전략 선회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7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1분기(1∼3월) 잠정 매출액 50조 원은 전년 동기(49조7800억 원)와 큰 차가 없다. 그 대신 영업이익은 9조9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조6800억 원)보다 50% 가까이 늘어났다. 과도하게 덩치를 키우지 않으면서 최대한 이익을 남기는 전략을 선택한 결실이다.
○ ‘몸집’ 대신 ‘효율성’ 선택
삼성전자는 창립 40주년을 맞은 2009년 10월 ‘2020년 글로벌 10대 기업 도약’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때 세웠던 목표가 2020년 매출액 4000억 달러(약 452조 원)였다. 그해 136조 원이던 매출액 규모를 11년 만에 3.3배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이었다. 실제 2013년 매출액 229조 원을 기록할 때만 해도 이 계획은 유효했다.
하지만 2014년 ‘갤럭시 S5’의 실패로 매출액이 206조 원으로 뒷걸음질하면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삼성전자는 2014년 9만9400명, 2015년 9만6900명, 지난해 9만3200명으로 국내 직원 수를 줄였다. ‘연간 200조 원 매출액’에 맞는 몸집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시장 변화에 좀 더 긴밀하게 대응하겠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반영됐다.
반면 영업이익은 빠르게 회복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7∼9월) ‘갤럭시 노트7’ 단종으로 인한 직접 손실 규모가 3조5000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4분기(10∼12월)에도 2조5000억 원의 간접 기회 손실을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연간 영업이익을 29조2000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갤럭시 노트7 여파로 인한 간접 손실은 올 1분기에도 1조 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영향만 없었다면 2013년 3분기의 최대치(10조1600억 원)를 경신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1분기 영업이익률 19.8%는 전년 동기 대비 6.4%포인트나 뛰어오른 것이다. 삼성전자의 효율성 극대화 전략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2분기 전망도 장밋빛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0.57% 하락한 208만 원에 거래를 마쳤다. 차익 실현 매물을 쏟아낸 투자자가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15.4% 올랐다.
금융투자업계는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2분기(4∼6월)에 사상 최고치를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모든 부문에서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며 2분기 영업이익을 13조4000억 원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2013년 36조8000억 원을 넘어 새 기록을 쓸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갤럭시 S8’과 ‘갤럭시 S8플러스’가 앞에서 끌고 반도체가 당분간 뒤를 든든하게 받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갤럭시 S8 시리즈의 연간 판매량은 갤럭시 S7과 S7엣지가 1년간 팔린 5000만 대를 훌쩍 넘어 6000만 대까지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갤럭시 S8 예약판매 첫날인 7일 국내 이동통신 판매점에는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지난해 노트7 때(2주일간 약 40만 대)보다 1.5배쯤 열기가 높다”고 했다.
반도체의 경우 초미세 공정 기술 개발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벌린 ‘초격차 전략’이 산업 호황기와 만나 빛을 발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부문은 18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급 D램과 48단 3차원(3D) 낸드플래시 등으로 압도적 세계 1위의 지위에 흔들림이 없다. 비(非)메모리반도체 부문도 2015년 14나노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공정을 상용화한 데 이어 올해는 10나노급으로 경쟁력을 강화했다.
한편, 삼성촉진펀드는 최근 골드만삭스, 델파이, 미디어텍 등과 함께 이스라엘의 반도체 스타트업 발렌스에 6000만 달러(약 678억 원)를 투자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에서는 오너 리스크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대형 M&A 등 투자 적기를 놓친다면 4차 산업혁명 선도 경쟁에서 점차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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