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왕이 되고 싶은 주인공과 빨간 재규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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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기자의 아, 저 차 영화에서 봤어!

영화 ‘더 킹’에 등장한 3세대 재규어XJ.
영화 ‘더 킹’에 등장한 3세대 재규어XJ.
 “남자라면 역시 재규어지”라는, 다소 근거 없는 로망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기자도 그중 한명이다). 재규어가 가진 다양한 이미지들이 그런 로망을 만들어 냈겠지만, 기자는 그중 ‘리퍼(Leaper)’의 존재가 컸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예전에 나온 재규어 차 보닛 앞부분에는 재규어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인 ‘리퍼’가 붙어 있었다. 정글을 그림자처럼 배회하다가 먹잇감을 향해 도약하는(leap) 맹수의 모습은 재규어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이 리퍼를 앞세우고 도로를 누비는 재규어를 타면 세상의 왕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영화 ‘더 킹’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부잣집 딸과 결혼한 박태수(조인성 분)는 계급제 사회였던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신분 상승을 이루고 빨간 재규어도 얻는다. “신입 때부터 재규어 소버린을 타고 출근할 순 없잖아”라며 겉으로는 부를 숨기면서도 평상시에는 재규어를 타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즐긴다. 그때 카메라는 리퍼를 클로즈업한 뒤 조인성의 자신만만한 얼굴과 재규어를 한 화면에 담는다. 잠깐 등장하지만 리퍼는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버린’은 재규어의 최상위 모델인 ‘XJ’ 중 최상위 트림을 일컫는 용어다. XJ 중에서도 실내·외 디자인을 더 고급스럽게 하고 좋은 소재를 쓴 것이 특징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재규어는 시대적 배경을 봤을 때 1994년 나온 3세대 XJ로 보인다. 지금은 ‘클래식’이 된 차여서 현재의 XJ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지금 판매되는 XJ는 8세대 모델로, 2009년에 출시돼 지난해 2월 부분변경을 거쳤다. XJ는 보닛부터 후면까지 유려하게 이어지는 실루엣인 ‘윌리엄스 라인’이 특징이다. 윌리엄스 라인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중 살아 있는 생명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자동차다”라고 말한 재규어 창립자 윌리엄 라이언스 경의 이름을 딴 것이다.

 8세대 XJ부터는 리퍼가 사라지고 그 대신 재규어가 포효하는 모습을 담은 ‘그롤러’ 엠블럼이 등장했다. 보행자가 차와 부딪혔을 때 보닛 위로 튀어나온 조형물이 보행자를 더 크게 다치게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가 강화돼 리퍼가 사라진 것이다. 더 이상 뛰어오르는 맹수의 조형물을 보닛에서는 볼 수 없게 됐지만 그 형상은 재규어 로고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김성규기자 sunggyu@donga.com
#재규어#더킹#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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