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타고 더 은밀해진 불법보조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휴대전화 불법판매 여전히 성행
‘수육 大자 초등학교 6학년’ 암호는 ‘갤럭시S6 64GB 13만원’ 의미

4일 기자가 불법보조금을 지급하는 한 스마트폰 판매업자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 ‘구사과16’은 ‘아이폰6 16GB’를, ‘ㅅㅋㅂㅇ’는 ‘스크(SK텔레콤) 번이(번호이동)’를 의미한다. 스마트폰 화면 캡처
4일 기자가 불법보조금을 지급하는 한 스마트폰 판매업자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 ‘구사과16’은 ‘아이폰6 16GB’를, ‘ㅅㅋㅂㅇ’는 ‘스크(SK텔레콤) 번이(번호이동)’를 의미한다. 스마트폰 화면 캡처
‘옛날 사과 작은 거 6개.’

과일가게 좌판에 붙어있는 말처럼 보이지만 6일 한 네이버 밴드에 올라온 암호다. ‘아이폰6 16GB(기가바이트) 모델 6만 원’이라는 의미다. 현재 SK텔레콤 5만9000원 요금제 기준 이 모델의 판매가는 공시지원금을 빼고 43만1400원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스토리 등 폐쇄형 커뮤니티에 ‘외계어’ 공지들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육 大자 초등학교 6학년’ ‘공책 5권 47페이지’ 등이다. 각각 ‘갤럭시S6 64GB 모델 13만 원’ ‘G5 47만 원’이란 의미다.

단통법 이후에도 불법 보조금을 뿌리며 스마트폰을 파는 ‘그들만의 시장’은 건재하다. 폐쇄형 커뮤니티 플랫폼과 일대일 채팅, 유령 오피스텔 사무실과 직접 방문 개통 등 그 수법도 다양하다.

판매자들은 자신의 매장에서 스마트폰을 산 충성 고객 등을 대상으로 ‘좌표’를 날린다. 좌표는 네이버 밴드 등에 일시적으로 열리는 불법 보조금 커뮤니티로의 초대장 링크를 말한다. 보조금 공지를 해석하고 일정한 형식의 댓글을 달거나 쪽지를 보내는 이에게 어느 판매점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식이다.

기자는 4일 이런 밴드 한 곳의 공지를 보고 쪽지를 보내봤다. 그러자 ‘예약 양식에 맞게 예약 문자 주세요’라는 답문이 왔다. 그들만의 메시지 양식을 아는지를 통해 단속자인지 고객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기자가 다시 양식에 맞춘 쪽지를 보내자 ‘서울 구로구 ××동 △△빌 ○○호입니다’라며 한 오피스텔 호수가 날아왔다. 불법 보조금의 성지로 불리다 지난달 영업정지를 맞은 신도림 테크노마트 건너편의 오피스텔이었다.

이처럼 폐쇄형 커뮤니티와 비공개 점포를 타고 불법 보조금이 퍼지는 것은 단속하기 힘들다. 정보가 일대일로 옮겨져 판매자와 일일이 접촉하지 않는 한 적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일부 밴드는 ‘명함을 찍어 올리라’며 인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불법 보조금 백태가 계속되는 것은 판매점들이 단말기 판매 리베이트(장려금)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통신사는 고가 요금제와 묶인 개통 건에 대해 판매점에 리베이트를 지급한다. 단통법 시행 이후 고객에 대한 지원금 액수가 대폭 줄어들자 판매점들이 리베이트 일부를 불법 보조금으로 얹어주며 스마트폰 판매 늘리기에 주력하는 것이다. 서울 용산의 한 판매점 사장은 “다들 불법인 것을 알지만 스마트폰 호황기에 생업으로 시작했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구조 변화에 문을 닫거나 이렇게 숨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식 온·오프라인 판매점과 대리점에서 스마트폰이 판매되도록 해 불법 보조금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다. 신종철 방통위 유통조사담당관은 “불법 온라인 개통이나 오피스텔 영업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가입 시 신분증을 직접 판매점 현장에서 규격 기기에 스캔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규격 스캐너별로 인터넷주소(IP주소)를 부여하고 정부가 관리하면 비공식 판매점은 원천적으로 스마트폰을 개통할 수 없게 된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불법보조금#스마트폰#단통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