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 한국건설]글로벌 디벨로퍼, 21세기 한국건설의 새 이름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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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준공된 현대건설의 ‘베트남 몽정1 석탄화력발전소’.
올해 1월 준공된 현대건설의 ‘베트남 몽정1 석탄화력발전소’.
최근 중동지역 한 국가의 지방정부는 인프라 공사 발주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하루빨리 공사를 시작해야 했지만 저유가로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입수한 GS건설은 재빨리 현지를 찾아가 “우리가 설계·조달·시공(EPC)은 물론이고 파이낸싱 방법까지 마련해줄 테니 사업을 맡겨 달라”고 설득했고 해당 정부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한국 건설사가 발주처보다 먼저 움직여 공격적으로 사업을 따낸 것이다.

한국 건설사들의 수주 방식이 바뀌고 있다. 공사가 발주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공사를 기획하고 발주처에 제안한 뒤 시공, 운영까지 도맡는 ‘디벨로퍼형’으로 나서고 있다. 단순하게 하드웨어 시공만 책임지는 게 아니라 공사를 기획하고,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소프트웨어 업무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국제경기 침체와 저유가로 해외공사 수주 가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발굴해낸 해결책이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 시장에서도 엿보인다. 그간 소극적이었던 임대사업에 뛰어들거나 ‘카셰어링’ ‘고급 컨시어지’ 등과 같은 주거서비스 고급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디벨로퍼형으로 체질 변화


국내 대형사들은 최근 들어 앞다퉈 디벨로퍼로 변신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나섰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발표한 중장기 전략에서 “2025년까지 글로벌 인프라 및 에너지 디벨로퍼로 성장하겠다”며 “연간 매출 25조 원, 영업이익 2조 원대를 달성하는 세계 15대 건설사로 발전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대우건설은 이를 위해 지난해 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해외 토목과 건축 분야를 맡는 ‘글로벌 인프라 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사업에 특화된 ‘MENA 사업본부’도 마련했다.

현대건설도 디벨로퍼형 사업을 고부가가치 분야로 보고 적극 발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플랜트 기본설계(FEED) 등 전반적인 엔지니어링 역량을 강화하고 기획제안형 사업을 발굴할 것”이라며 “금융기관과 협력관계를 강화해 투자개발형 사업에도 적극 뛰어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내외 선진 기업과의 협업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국내외 협력 기업을 선정하고 사업 분야와 지역별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건설은 또 해외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글로벌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핵심 분야의 연구인력, 신시장 개척을 위한 지역 전문가, 시운전·설계·품질 등 특수한 분야에서 외국인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중동 밖으로 시장 다각화


2011년 수주된 후 공사가 진행 중인 GS건설의 싱가포르 지하철 ‘C925 프로젝트’ 터널 내부. 한국 건설사들은 중동을 벗어나 아시아, 중남미 등으로수주 영토를 넓히고 있다. 현대건설·GS건설 제공
2011년 수주된 후 공사가 진행 중인 GS건설의 싱가포르 지하철 ‘C925 프로젝트’ 터널 내부. 한국 건설사들은 중동을 벗어나 아시아, 중남미 등으로수주 영토를 넓히고 있다. 현대건설·GS건설 제공
국내 건설사들은 그동안 중동 일변도였던 해외 수주 시장을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서 굵직한 수주 성과를 잇달아 올리고 있다.

GS건설과 삼성물산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지하철 공사를 연이어 수주했다. GS건설은 싱가포르에서 14억6000만 달러(약 1조7000억 원) 규모의 대중교통 차량기지 공사 ‘T301’ 프로젝트를 수주해 올 3월 21일에 계약했다. 삼성물산도 같은 날 싱가포르 지하철 톰슨 노선 ‘T313’ 구간 공사를 수주했다. LTA가 발주한 이 공사의 총 공사비는 6억1000만 달러(약 7100억 원) 규모다. 두 회사는 싱가포르에서만 3월 말 현재 14건의 지하철 공사를 따내 시장 다각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우건설도 2월 인도 비하르 주에서 갠지스 강을 가로지르는 총 4억8000만 달러(약 5587억2000만 원) 규모의 교량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또 같은 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메키-즈웨이 고속도로’ 공사를 따냈다.

월세 시대, 임대사업 강화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건설사들이 ‘짓는 사업’에서 ‘관리하는 사업’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꾀하고 있다. 분양시장이 침체된 데다 전세난이 길어져 임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기업형임대사업(뉴스테이)자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등 지원하고 있어 건설사들의 행보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건설은 뉴스테이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필요한 각종 주거복지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진행하는 ‘뉴스테이 플래너’를 각 단지에 둘 계획이다. 입주민들의 불편과 복지를 책임지는 일종의 ‘입주민 매니저’를 두는 것이다. 이 회사는 계열사와 연계한 특화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롯데렌탈, 롯데손해보험 등과 협력해 뉴스테이 입주자에게 임대료를 결제할 수 있는 멤버십 카드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입주민을 지원하는 호텔식 컨시어지를 도입할 예정이다. 임대주택의 이미지를 저렴한 주거공간에서 실용적이고 고급스러운 주거지로 바꾸기 위해서다. 현대건설은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의 강점을 살려 ‘뉴스테이 카셰어링’ 서비스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편 부동산 금융을 신사업으로 키우는 건설사들도 있다. 일찍이 부동산금융업 진출을 선언했던 현대산업개발은 운영 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자산관리회사(AMC)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주택개발 리츠(부동산투자회사)를 육성하고 있다. 리츠가 LH의 땅을 사서 주택을 지어 공급하면 LH는 자산관리를 맡는 식이다. LH 관계자는 “LH가 우량한 공모 리츠를 발굴해 국민들에게 투자 수익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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