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현진]‘피터팬 증후군’에 빠진 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박현진 산업부장
박현진 산업부장
최근 한 중견기업 대표 A 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카카오가 화제에 올랐다. 4월 초로 예정된 대기업집단 지정에 카카오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자산 총액이 5조 원이 넘는 기업집단을 파악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카카오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하면서 자산이 크게 늘었고 올해 초 음악 콘텐츠 회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덩치가 커진 탓이다. 국내 인터넷 기업으로서 처음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른다는 사실이 충분히 눈길을 끌 만하다. 중견기업들은 이런 카카오를 부러운 시각으로 볼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4조 원대 중후반의 자산을 가진 중견기업들은 사업을 확장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이 많다고 A 씨는 전했다. 몸집을 불릴 여력은 충분한데 자산이 5조 원이 넘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순간 적용받는 규제가 배가 넘게 늘어난다. 자산 규모 2조 원에서 5조 원 미만의 기업은 적용받는 주요 규제가 21개지만 5조 원 이상으로 자산이 커지면 44개로 불어난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채무보증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30개 이상 다른 법의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가뜩이나 규제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만도 하다.

그렇다 보니 ‘피터팬 증후군’이 한국 기업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피터팬 증후군은 어른이 되어서도 책임지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어른아이’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는 심리학 용어다. 기업들이 규제 때문에 회사 키우기를 고민하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마치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격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한국의 6대 주력 산업의 성장률이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큰 원인으로 중견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을 지목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3년까지 해마다 2∼4개의 그룹이 새로운 30대 그룹으로 진입했으나 2004년 이후에는 1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대기업집단 지정제가 도입된 것은 1987년으로 30년이 되어 간다. 현재의 지정 기준은 2008년 만들어져 9년째 손질하지 않았다. 현재 61개 대기업집단 1위인 삼성그룹의 자산은 약 348조 원이다. 카카오가 내달 초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약 70배 덩치가 큰 삼성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기업의 경제력 집중에 따른 폐해를 막자는 취지에서 이 제도가 도입된 것은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덩치가 수십 배 차이 나는 기업을 같은 잣대로 들이댄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대기업집단 기업 사이에서도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상황에서 적게는 10대 그룹, 많게는 30대 그룹 정도로 대상을 줄이면 된다. 그러면 제도의 취지는 충분히 살리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철강 조선 화학 등 한국을 이끌어온 주력 제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중견기업이 규제를 걱정하지 않고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올해 3% 성장률을 예상했던 한국은행이 30일 전망치를 2%대로 낮추는 것을 시사할 정도로 한국 경제는 안갯속에 놓여 있다. 공정위도 필요성을 느끼고 수년 전부터 지정 기준을 높이는 것을 검토했지만 언제나 벽은 정치권의 ‘재벌 봐주기’ 논란이었다. 여야가 내놓은 4·13총선 경제 공약에서 이 내용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같은 논란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프레임에 갇혀 경제를 방치할 것인지 묻고 싶다. 봐주고 싶어도 봐줄 만한 재벌이 점점 줄어든다면 이러한 논란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점을 직시했으면 한다.
 
박현진 산업부장 witness@donga.com
#카카오#피터팬 증후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