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편의냐, 골목상권 상생이냐

  • 동아일보

기업형 슈퍼마켓 끝없는 딜레마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상가에 있는 롯데슈퍼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일요일마다 매월 4번 문을 닫는다. 강남구 조례가 정한 대기업슈퍼마켓(SSM) 의무휴업일이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 은마아파트 상가 자체 휴일이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통상 SSM의 주말 매출은 평일의 갑절 수준이다. 매달 주말 장사 8일 중 4일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의무휴업일에 더해 두 번을 추가 휴점하면서 월매출 4700만 원, 연매출 5억6600만 원을 손해 보고 있다는 게 롯데슈퍼 측의 주장이다. 경영에 부담을 느낀 롯데슈퍼는 2014년 7월 강남구청에 상가 휴일에 맞춰 휴무일을 조정할 수 있도록 2차례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의무휴업일 준수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롯데슈퍼는 이때부터 상가 자체휴일을 강남구 조례에 맞춰 매월 둘째, 넷째 주로 변경하고자 은마종합상가번영회와 협상을 벌였다. 협상 초기 번영회는 롯데가 일부를 부담해 낙후된 상가 건물을 새로 단장해 달라는 조건을 들고나왔다. 롯데슈퍼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막판에 입점 상인 일부가 “35년 동안 유지해온 휴일을 바꿀 수 없다”고 반대해 없던 일이 됐다. 이후 번영회의 일부 상인은 휴일을 바꾸는 대신 주차장 시설 개·보수, 상가건물 도색, 건물 리모델링 등의 추가 조건을 제시했고 현재까지 협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지자체 조례에 의무휴업일을 변경할 수 있도록 예외 사항을 뒀다면 갈등이 쉽게 풀렸을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을 위한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이 주민들의 편의를 저해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합의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 형태로든 금전적 보상을 받으려는 일이 수시로 생긴다.

원래 지역 골목상권이 없던 신도시에 먼저 ‘알박기’를 해 SSM의 입점을 막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위례신도시에 지난해 12월 입점하기로 했던 롯데슈퍼는 서울 송파강동슈퍼마켓조합이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하면서 ‘최소 2년간 입점 금지’를 요구하자 개점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 주변에는 중소형 슈퍼마켓밖에 없어 지역주민들은 장을 보기 위해 차로 20분을 이동해야 한다.

2014년 세종시에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들어갈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지역 슈퍼마켓조합은 20억 원의 상생기금을 요구했다. 개점을 계속 연기하다 지역 중소상인과의 사업조정 절차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개점을 강행했던 홈플러스는 5000만 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유통 전문가들은 지역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오히려 지역주민의 불편을 낳고 있는 문제를 막기 위해 현실에 맞는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사자인 대기업과 지역상인이 직접 협의하다 보니 금전적 보상으로 이어지는 주먹구구식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유명무실한 유통상생협의회 대신 대기업과 지역상인 가운데서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로 이뤄진 제3의 협의체를 두고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야 best@donga.com·백연상 기자
#골목상권#상생#기업형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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