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기업 빚 551조… 한계 부닥친 ‘차입경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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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좀비기업 ‘수술’ 시급

지난해 미국 1, 2위 화학회사인 다우케미칼과 듀폰이 합병했다. 중국에서는 1위 국영해운사인 코스코와 2위 국영 해운사인 차이나시핑그룹이 합병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산업계에서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그러나 국내 산업계의 구조조정은 이에 비하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 뒤늦게 통과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 매출 500대 상장사 중 111개 한계기업


3일 동아일보와 신한금융투자의 분석 결과 지난해 1∼3분기(1∼9월) 매출 500대 상장사 중 111곳의 이자보상배율은 1 미만이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런 한계기업 수는 각각 2012년 102곳, 2013년 98곳, 2014년 115곳이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수가 2014년보다 소폭 줄어든 것은 일부 기업의 자산 매각, 환율 상승, 저금리 기조가 겹친 착시 현상”이라며 “산업 경쟁력이 강화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 111곳을 업종별로 분석한 결과 건설업종이 18곳으로 가장 많았다. 기계·중공업 분야와 철강·비철금속이 각각 11곳, 자동차·자동차부품이 10곳, 정보기술(IT) 하드웨어 8곳, 조선 7곳, 운송(항공·해운·물류) 6곳, 화학 6곳 등의 순이었다. 한편 500대 기업 중 40곳은 2012년부터 2015년(3분기)까지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좀비기업’이었다.

500대 기업 중에서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기업은 70곳(14%). 한국은행이 지난해 상반기(1∼6월) 1831개 기업(금융업종 제외)을 분석한 결과 나온 비율인 12.9%보다 높다.

100대 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11개 기업이 2012년부터 2015년 3분기까지 4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다. 100대 기업의 부채액은 2012년 506조 원에서 2015년 3분기까지 551조 원으로 크게 늘었다.

100대 기업을 기준으로는 23개 기업의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다. 업종별로는 조선과 건설이 각각 4곳, 기계와 운송(항공 해운)이 각각 3곳, 철강과 IT 가전, 상사·자본재가 각각 2곳, 자동차, 화학, 유틸리티가 각각 1곳이다.

○ 사업재편보다 지배구조 개선 M&A 규모가 상위

국내 산업계는 구조조정이 절실하지만 속도가 더디다. 조선업계는 지난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 3’만 8조 원가량 적자를 낸 가운데, 올해 ‘수주 절벽’에 부닥쳤다. 국내 철강 생산량은 7000만 t 수준이지만, 중국 등의 공급 과잉으로 세계에서 7억 t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철강업계에 ‘다운사이징’ 필요론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공시된 국내 인수합병(M&A)을 총가치 순으로 종합한 결과 1위는 SK C&C와 ㈜SK 합병(267억3148만 달러), 2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109억3823만 달러)이다. 모두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M&A다.

상위 M&A 중 선제적 사업 재편이라 할 수 있는 거래는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 합병(4위), 롯데케미칼의 삼성SDI 화학사업부문 인수(5위) 정도다. 3위는 테스코의 홈플러스 매각, 6위는 하림의 팬오션 인수, 7위는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이었다.

이에 비해 최근 중국 정부는 수년간 철강 생산량을 1억5000만 t 감산하기로 했고, 일본에선 일본 최대 철강업체 신일철주금이 4위 업체 닛신제강을 인수하기로 하는 등 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 채권단 중심 구조조정 한계


국내 부실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주로 채권단이 담당한다. 그러나 채권단은 산업 전문성이 부족하고 단기적 원금 회수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닥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상선은 2013년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협의해 자구안을 만든 뒤 지난해 말까지 목표액 3조3000억 원의 108.6%를 확보했다. 그러나 채권단이 시황 부진이 장기화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단기적 유동성만 공급하면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선제적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쳤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2분기 3조318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지만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부실 규모도 파악하지 못했다.

SPP조선은 지난해 탱커 8척을 수주했지만 채권단끼리 의견이 엇갈려 RG(선수금환급보증)를 발급해주지 않아 11월 계약이 취소됐다. 3개월이 지난 지난달이 돼서야 채권단은 신규 RG 발급에 합의했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채권단 입장에서 단기적 성과를 보고 자산매각과 대출금 회수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사후 구조조정 방식’이 나쁜 교훈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일자리 감소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기업이 도산 직전에 이르면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부도 나면 ‘빅딜’ 형태로 다른 기업에 매각시켜 살리는 방식이 선제적 재편을 하지 않는 습관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자발적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매물을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팔아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며 “기존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는 기업에 넘긴 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김성규 기자
#기업#빚#차입경영#좀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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