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10%를 ‘매도’로…주진형 한화증권 사장이 달라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6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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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한 때 ‘칼잡이’로 불렸다. 2013년 8월 한화증권 대표이사가 된 이후 처음 한 일이 직원 1653명 중 21%인 350명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그랬던 주 사장이 완전히 달라졌다. 다양한 혁신 아이디어를 도입해 한화증권의 부활을 진두지휘하는 ‘길잡이’로 변신한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에게는 증권업계의 관행을 깨고 ‘매도’ 보고서를 과감히 내도록 독려했다. 주식 단타투자를 통해 증권사 수익만 불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직원은 해당 수수료 수익을 성과에 반영하지 않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그의 혁신적 시도 덕분에 2013년 464억 원의 적자를 냈던 한화증권은 지난해 222억 원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는 1분기(1~3월)에만 작년 한 해 수준인 243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 증권업계 ‘칼잡이’에서 ‘길잡이’로

한화증권은 지난해 3월 “잘 모르는 펀드는 팔지 않겠다”며 ‘코어펀드’ 제도를 발표했다. 다양한 상품을 파는 대형 슈퍼마켓이 아니라 잘 아는 펀드만 골라 파는 전문점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한화증권은 23개 유형의 35개 코어펀드를 선정해 투자자들에게 소개했다.

지난해 5월에는 장기투자 문화를 전파하겠다며 신용거래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레버리지 펀드의 신규판매를 아예 중단했다.

주 사장은 또 한화증권에서 내는 리포트 중 10%를 매도 의견을 제시하는 리포트로 채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출입처’인 분석대상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매도 의견을 잘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관행을 과감하게 깨지 못하면 투자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게 주 사장의 생각이었다. 한화증권이 올해 내놓은 32개 리포트 중 10%에 가까운 3개가 매도 의견이었다.

한화투자증권은 같은 취지로 지난해 9월에는 고위험등급 주식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연히 고위험등급으로 선정된 회사들로부터 엄청난 불만을 듣기도 했지만 주 사장은 이같은 ‘실험’을 고수할 생각이다.

● 핵심 투자철학은 ‘고객중심’

주 사장은 최근 증권사 내에 ‘편집국’을 설치해 한국은행과 언론사를 거친 경력사원을 편집국장으로 채용했다. 애널리스트들이 내는 보고서나 상품설명서 등이 지나치게 ‘업계 중심’의 용어로 돼있어 고객이 알기 쉽도록 ‘데스킹’을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또 직원 보상 제도를 전면 개편해 주식형이든 채권형이든 모든 펀드를 동일 상품군으로 묶어 1%의 대표 보수율을 적용했다. 직원들이 판매 수익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주 사장은 “고객 중심의 장기 투자가 정착돼야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직원들도 안정적인 은퇴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직원 복지도 소홀히하지 않았다. 주 사장은 최근 여직원들의 유급 출산휴가 기간을 종전 100일에서 180일로 늘리고, 출산휴가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증권업계의 평가도 후한 편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주 사장이 추진하는 일련의 혁신적인 제도를 관통하는 것은 ‘고객 중심’의 투자철학”이라며 “회사와 업계에는 단기적으로 충격이 있을 수 있지만 고객에게 꾸준히 신뢰를 주면 반드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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